'헌법 개정' 몰아가는 일본 보수신문들

[글로벌 리포트│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 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오는 4월 28일은 1951년 일본이 48개 연합국과 평화조약을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조약에는 일본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사할린의 권한을 포기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한국과 중국은 조약 당사자에 포함되지 못했다. 한·일간 역사문제, 영토문제가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조약 체결 60주년을 한달 앞둔 3월 27일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창간 80주년을 앞두고 신헌법 기초안을 만들겠다며 위원회를 구성하고 현행 헌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리즈를 시작했다. 일본 언론이 스스로 신헌법안을 만들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4년 요미우리신문은 일본국 헌법 개정 시안을 발표. 일본 사회의 헌법 개정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2004년까지 3차례에 걸쳐 헌법 개정안 시안을 발표했다. 일본의 국회도 2011년 11월 헌법개정 심사회를 발족시키고 헌법개정을 위한 환경조성에 나섰다. 산케이신문도 1981년 신년 사설을 통해서 헌법개정을 주장한 바 있다.

산케이신문이 구성한 위원회 명칭은 ‘국민의 헌법 기초위원회’다. 위원회는 다쿠보 다다에 위원장(오비린 대학 명예교수)을 포함해서 5명의 학자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회는 오는 5월까지 신헌법 초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자민당도 지난 3월에 일왕을 수반으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마련한 바 있다. 개헌논의가 일본 사회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라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사회를 감시하는 워치독(Watch dog) 역할을 해야 하는 미디어가 사회의 기본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는 헌법초안을 직접 제시하겠다는 것은 저널리즘의 영역 밖의 일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자사의 헌법 개정안을 ‘제언보도’라고 규정하면서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론사가 헌법개정안을 내놓는 것은 저널리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헌법 개정안 제시는 미디어가 자신의 역할을 정치적 당사자로서 규정한다는 측면에서 저널리즘 활동과는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산케이는 헌법개정 이유로 ‘중국 위협론’과 ‘자주헌법 제정’ 필요성을 들었다. 중국위협론의 근거는 남사군도를 포함해 중국이 일본 영토인 센가쿠열도를 넘보고 있는 것. 중국이 일본 영해를 침범하고 있는데도 일본이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 원인이 헌법에 있다는 것이다. 일본국 헌법 9조는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규정, 무력행사를 포기하는 내용이다. 산케이신문은 2011년 9월 중국어선이 일본 순시선에 충돌사건 이후 센가쿠열도 영해에 대한 중국의 침범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해상보안청이나 해상자위대도 퇴거를 요구할 수 없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도,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에 대응할 수 없는 것도 헌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산케이신문은 지금의 헌법을 ‘미국제 헌법’이라고 단언하고 일본인의 자립심을 훼손하고 일본을 무력화시키는 전후 민주주의 폐해라고 단정하고 있다.

두 번째 헌법개정 이유로 든 것은 지난해 일본을 강타한 동일본 대지진. 헌법에는 중의원이 해산 시 참의원을 긴급소집하는 규정은 있지만 ‘국가비상 사태’에 대한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시 정부가 재해긴급 사태를 선포하지 않고 재해대책기본법에 규정된 ‘중대긴급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지 않은 것도 헌법에 관련규정이 없어서 준비를 게을리했다는 해석이다. 동일본 대지진 때 가장 활약한 것은 자위대라며 자위대의 역할을 헌법에 구체적으로 명기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 국민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헌법은 개인주의를 절대화하고 가족과 국가를 경시하는 풍조를 낳았다는 다쿠보 위원장의 발언에서 헌법개정의 본심을 읽을 수 있다. 산케이신문이 창간 기념사업이라는 명목을 걸고 있기 때문인지 아사히, 마이니치 등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보수언론의 헌법개정론만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상황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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