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터, 플레이어, 팩트 파인더
[스페셜리스트│법조] 심석태 SBS 기자·법학박사
심석태 SBS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4.18 15: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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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석태 SBS 기자·법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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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이 선거의 대미를 장식하는 바람에 빛이 약간 바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 4·11 총선의 전 과정에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미친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그나마 야권에게 그 정도의 의석을 안겨준 것이기도 하고, 거꾸로 보수층의 결집을 가속화시킨 면도 있다.
말로는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고 부르면서 언론은 이 사건의 진전에 어느 정도나 기여했을까.
아무래도 후한 점수를 받기는 어렵겠다. 좀 냉정하게 말하면 방송과 신문은 이 사건에서 ‘사실의 확인자’ 역할은 제쳐둔 채 사건을 중계하는 데 머물거나 때로는 아예 선수로 나서려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적지 않은 기자들이 사찰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느라 애를 쓴 것도 사실이지만 큰 줄기를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애초에 이 사건을 처음 드러낸 건 야당 의원들의 폭로였다.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져갔지만 언론 보도는 정치권과 청와대 사이의 공방을 중계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방송이 그랬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이 이 사건을 의욕을 갖고 파헤칠 거라 기대하는 사람도 없었고 검찰 역시 그 기대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수사에 대한 논평과 분석은 무성했지만 수사 결론에 도전할 수 있는 사실의 발굴은 미흡했다. 우리 언론에 덧씌워진 정파성의 이미지는 애써 발굴한 내용들까지 빛을 바래게 했다.
물론 총선 임박해서 불법 사찰 사건의 불씨를 살려낸 것도 언론이기는 했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결국 기존의 검찰 수사는 근본적으로 뒤집어졌다. 물증들까지 쏟아졌다. 2600여 건의 사찰 관련 문건이 공개됐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주류 언론인의 발굴 취재라고 할 사찰 관련 문건 공개는 파업 중인 KBS 새노조 소속 기자들의 작품이었다. 파업 중인 기자들이 발굴한 내용을 업무 중인 기자들이 받아썼다.
이 와중에도 중계식 보도의 한계는 반복됐다. 2600여 건에 포함된 경찰의 합법적인 감찰 문건을 KBS 새노조 발표만 믿고 모두 불법 사찰 문건이라고 보도한 대목이다. ‘낙하산 사장 퇴진’을 내걸고 파업 중인 KBS 새노조야 어떻게든 낙하산을 내려 보낸 청와대에 타격을 주려는 생각이 앞섰겠지만 언론이 검증 없이 받아쓰는 바람에 청와대에 물타기 기회를 줬고 이후 합법 감찰과 불법 사찰 시비가 이는 등 국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불법 사찰도 모자라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중대 범죄가 선거 와중에 제기되는 정치 공방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았다. 스스로 플레이어가 된 언론과 중계식 보도의 합작품인 셈이다.
어떻게 하면 대형 사건마다 벌어지는 이런 일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결국은 우리 언론이 ‘사실의 확인자’라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대책이 있을까.
물론 안 그래도 인력도 부족한데 사실의 확인자 노릇은 훨씬 품도 많이 들고 위험도 따른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나꼼수가 전국을 뒤흔든 건 그들이 내뱉는 욕설 때문이 아니라 맞든, 틀리든 기존 언론이 얘기하지 않는 팩트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중계 보도의 편안함,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사실의 확인자로서의 역할이 마지막까지 언론의 생존을 담보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하루하루 기사거리를 던져주는 검찰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 우리 언론의 과도한 정파성 문제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