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사탕'에 눈먼 언론

[글로벌 리포트│중동·아프리카] 윤창현 SBS 카이로 특파원


   
 
  ▲ 윤창현 SBS 카이로 특파원  
 
문명의 보고인 이집트엔 볼 것이 많다. 피라미드를 포함한 엄청난 문화유산에 먼저 눈길이 가겠지만 기자의 눈에 가장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는 ‘아에쉬’라 불리는 이들의 주식, 전통빵을 공급하는 국영 빵집들의 모습이다.

1950년대 이집트의 국부로 추앙받는 나세르 혁명 이후 생겨난 국영 빵집에선 시중보다 5배 정도 싼 값에 ‘아에쉬’를 공급해 왔다. 지금도 국영빵집에선 1 이집션 파운드, 우리 돈 200원 정도면 한 가족의 하루 식생활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이 국영빵집들이 위태롭다. 지난 몇 년간 국제 밀 가격이 폭등한 데다 최근엔 빵을 굽는 데 사용하는 부탄가스 품귀현상까지 벌어져 곳곳에서 제대로 빵을 굽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전체 인구의 40% 이상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연명하고 있는 이곳 서민들에겐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국영 빵 가게 앞엔 조금이라도 먼저 빵을 탈 순서를 차지하려는 다툼이 벌어지고, 주먹다짐이 벌어지기 일쑤다. 실제로 기자가 거주하는 카이로의 한 국영빵집 앞에선 빵 배급 순서를 놓고 벌어진 실랑이가 살인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렇게 빵이 없어 굶주리거나 빵을 구하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서민들의 질곡 같은 삶이 계속되는 동안 몇몇 이집트 언론인들의 초고액 연봉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최근 이집트 관영 신문인 ‘알아흐람’의 경영진이 우리 돈으로 무려 수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아 온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이집트의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7분의 1 정도인 3000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문제가 된 언론인들의 연봉은 그야말로 천문학적 수준이다.

‘알아흐람’은 2년 전 무바라크의 백악관 방문 당시 무바라크가 오바마 앞에 걷는 것처럼 사진을 조작했다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며 유명세를 탔고, 시민혁명 내내 무바라크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독재권력으로부터 부를 하사받은 언론인들의 추잡스러운 보은은 그들을 지식인으로, 사회의 거울로 여겨왔던 시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집트 의회에선 이런 언론인들을 포함한 고액연봉자들에 대한 급여제한 논의가 제안된 상태다.

이런 이집트의 현재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다.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 시절, 대다수 언론은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광주학살을 저지른 원흉을 민족의 영도자로 추어올리느라 영혼을 팔았고, 독재자는 그들에게 세금감면 등 온갖 특혜를 보장해 줬다. 언론과 권력은 한 몸으로 뒤엉켰고, 신문 지면과 방송 뉴스는 서민의 ‘빵’ 대신 독재자의 낯부끄러운 ‘치적’으로 도배됐다.

그러나 이런 기억을 그저 과거로 묻어버리기엔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우리 언론의 현실이 너무나 참담하다. 20년 전 독재 권력의 혀 노릇을 하거나, 현실권력에 빌붙은 언론인들이 방송사를 좌지우지하고 있고 서민의 ‘빵’을 말하려던 기자들은 일터가 아닌 거리로 내몰린 지 오래다.

언론의 수준은 그 나라 민주주의 수준을 정확히 반영한다. 이 정권 들어 해마다 뒷걸음질 치는 언론자유지수를 보며 기자는 이집트의 지식인과 젊은이들은 만날 때 마다 무척이나 곤혹스러워진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20여 년 앞서 시민혁명을 일궈내고 조금씩 진보해 온 우리의 경험을 배우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얘기는 거꾸로 지난 몇 년간 어떻게 언론과 민주주의가 유린돼 왔는지에 관한 실패의 경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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