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되고 싶은 CNN의 고민
[글로벌 리포트│미국] 성기홍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성기홍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5.09 14: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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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홍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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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일 미국의 뉴스채널 CNN으로서는 치욕스러운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4월 닐슨 미디어 리서치의 시청률 조사결과 CNN의 평균 시청자가 35만7000명으로 나왔고, 이는 월별로 따졌을 때 최근 10년 동안 CNN 사상 최악의 시청률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 사상 첫 24시간 뉴스채널로 창설돼 걸프전 보도로 명성을 떨치며 출발한 CNN이 시청률 하락세를 걷기 시작한 것은 새삼스러운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정치색을 분명히 하며 뉴스를 전달하는 폭스뉴스와 MSNBC 등 경쟁 뉴스채널이 두각을 보이고 사실(Fact) 전달에 주력하는 CNN이 시청률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점은 음미해야 할 대목이다.
언론 본연의 가치인 사실 보도와 독자(시청자)의 수요가 양립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 문제를 대두시킬 뿐만 아니라 당파적 대립이 심화되는 현대 정치환경에서 저널리즘이 갈등의 조정 완충 역할을 할 것이냐, 아니면 갈등을 심화 증폭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느냐라는 존재론적인 고민까지 동반하기 때문이다.
보수성향 폭스뉴스는 오바마 행정부 초기부터 ‘오바마 공격의 선봉’에 섰다. 진보성향의 흑인 대통령 탄생에 대한 미국 내 보수우파의 위기의식을 폭스뉴스가 대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때 양측의 갈등이 극에 달하자 백악관은 “폭스뉴스는 언론 기관이 아니다”라고까지 선언했다.
언론비평가들조차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반(反) 오바마 보도를 해댔지만 폭스뉴스의 시청률은 뉴스 채널 중 부동의 1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MSNBC는 폭스뉴스와는 정반대로 리버럴 성향으로 방향을 잡고 색깔있는 보도를 하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프라임타임대 시청률에서 CNN은 MSNBC에 2위 자리까지도 넘겨줬다.
지난달 CNN이 35만7000명의 평균 시청자를 채널 앞으로 모았을 때 MSNBC는 이보다 많은 42만5천명의 시청자수를 기록했다.
‘정치적 렌즈’를 바탕으로 정반대 방향에서 보도하는 두 채널과 달리 CNN은 사실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비평가들조차 여전히 CNN을 편견없이 보도하는, 시청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뉴스채널로 꼽고 있다.
CNN의 창업자 테드 터너는 6일 CNN 피어스 모건 토크쇼에 출연해 “CNN은 저널리즘 분야에서 ‘데일리 뉴스’(자극적인 기사를 중심으로 한 뉴욕의 타블로이드 신문)가 아니라 ‘뉴욕타임스’가 되기를 원하며, ‘하드 뉴스’(Hard News)에 초점을 둬야 한다”며 “비록 시청률이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CNN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터너는 특히 “CNN이 최고의 명성을 갖고 있고 위기가 닥쳤을 때 모든 사람들이 틀어보는 채널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 방향이 CNN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시청률에 연연해하기보다는 방송분야에서 ‘정론직필’을 추구하겠다는 당찬 비전이다.
그러나 CNN에도 현실적인 고민은 없지 않다. 방송에서 시청률은 광고수입과 직결되며 뉴스의 명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정론 보도, 권위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적정한 시청률, 광고 수입을 토대로 한 폭넓은 취재망 확충이라는 선순환 구조의 확립은 지속 가능한 CNN 발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뉴욕타임스 전 편집장 빌 켈러는 “사람들은 심장마비를 일으켰다고 생각할 때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선거 때나 대형사건이 일어났을 때 CNN을 본다. 하지만 병원이든, CNN이든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는다”고 CNN이 처한 현실을 꿰뚫었다.
누군가 폭스뉴스를 일컬어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만든 최악의 독성 유산(Toxic Legacy)”이라고 악평했다. 그러나 색깔있고 자극적 뉴스를 선호하는 독자들에 영합해 폭스뉴스가 영향력을 확대시켜가는 언론 현실은 엄존한다.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저널리즘의 고민이자 저널리즘을 넘어선 고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