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사장은 공영방송을 사영화했나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한국의 공영방송은 어차피 권력을 쥔 정권의 전리품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에도 그랬다.” 공영방송을 되살리자는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기자들의 논리는 바로 이것이다. 방송을 좌지우지하려 한 건 지난 정부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굳이 이제 와서 싸우는 건 의미 없고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때 비판적인 기사가 삭제되거나 프로그램이 아예 폐지된 적이 있는지 그들은 굳이 답하지 않는다. 대부분 해직기자 출신이던 당시 공영방송 사장들이 비판적인 기자들을 해고한 적이 있는지도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은 전리품’이라는 기분 나쁜 주장이 다시 주목받는 건 한 가지 이유다. 그나마 정권의 전리품이면 다행이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21세기 한국의 국민들은 공영방송이 정권도 아닌 한 개인의 전리품이 된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다. 파업 100일을 맞은 MBC 김재철 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회사 법인카드로 2년간 무려 7억원을 쓴 김재철 사장은 지금 더 황당한 논란에 휩싸여 있다. 특정 무용가에게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수십억 원대의 거액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뮤지컬제작 경험이 전무한 이 무용가에게 창사특집 대작 뮤지컬의 제작과 주연까지 맡기며 10억원 가까운 제작비를 일괄 지급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이 무용가가 MBC로부터 받은 공연 개런티는 유명 국악인들의 수십 배에 달하고 심지어 특급 한류스타들보다 훨씬 많다는 믿기 힘든 사실도 드러났다.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는 건 이 무용가의 오빠가 MBC의 고위직에 임명되고 거액의 월급을 받아갔다는 사실이다. 옛 왕조시대에나 볼 법한 정실인사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에서 벌어진 셈이다. 심지어 MBC노조에 따르면 이 인사는 사기혐의 등으로 기소된 해외도피사범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범죄전력을 몰랐고 능력이 있어 채용했다는 변명만 하고 있다. 공영방송사 사장의 한 예술인에 대한 이 같은 무차별적인 특혜는 지난 2007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변양균·신정아 사건까지 연상시키고 있다.

이제 MBC 파업의 초점은 공영방송의 독립성 쟁취를 넘어 비리혐의에 휩싸인 경영자의 사법 처리문제로 바뀌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설사 개인 기업이라도 사장이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회사재산을 넘겼다면 주주들과 직원들에게 피해를 안긴 중죄에 해당한다. 하물며 국민의 자산인 전파를 위임받아 방송을 만드는 공영방송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 파업을 회사 내부 문제로 보면서 개입하지 않겠다고 한 방송문화진흥회와 방송통신위원회도 이젠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 김재철 사장의 명백한 비리혐의를 묵인한다면 그들 또한 대주주이자 감독자로서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권의 전리품에서 이젠 한 개인의 전리품으로까지 전락해버린 한국의 공영방송. 김재철 사장의 이번 의혹은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뿐만 아니라 진정한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들에게마저 모욕을 안겨 준 중대한 사안이다. 김재철 사장은 스스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아 결백을 증명하든가, 아니면 자진 사퇴해 늦게나마 국민들에게 끼친 피해에 사죄해야 할 것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