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 대지진 4년…3번의 놀람
[글로벌 리포트│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5.15 09: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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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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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2일 오후 2시28분, 중국 쓰촨성의 성도인 청뚜 인근의 원촨, 베이촨, 미앤양, 두장옌 일대가 규모 8의 대지진으로 9만명에 가까운 목숨이 희생되는 대참사를 겪었다. 지진 발생 4년을 취재하기 위해 찾은 참사 현장, 그리고 복구 현장은 방문객을 여러 번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 아직도 상흔이 생생한 참사 현장은 방문객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저 무너진 건물더미에 내가 있었다면….” 이런 상상이 고통 속에 숨져갔을 망자들에 대한 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충격적인 순간에 대한 환영적인 연상작용은 어쩔 수가 없었다.
도시 전체가 이제는 지진 참사의 유적지로 변한 베이촨 창족자치현은 경사가 60~70도는 돼 보이는 가파른 산세 밑에 조성된, 비유하자면 역삼각형의 가장 하단부에 조성된 도시로 지진 전까지만 해도 산세 수려한 명승지였다.
그러나 대지진으로 이 험준한 산비탈이 무너져 내리면서 대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구도심의 야채시장 부근에서만 무려 4천명이 매몰돼 숨지는 등 2만2000명의 주민 중 만 5000명이 넘는 사람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당시의 충격적인 죽음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안타깝지 않고, 억울하지 않고, 원통하지 않은 죽음이 있겠는가마는 베이촨 고등학교의 사례는 정말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다.
그 어느 시절보다도 푸르렀을 청춘들, 베이촨 지역에서 수재들은 다 모였다는 베이촨 고등학교가 거의 매몰되다시피 해 700명이 희생됐고, 시신 수습마저 어렵자 그들이 묻힌 학교터에 그대로 공동묘가 조성되었다. 그들의 까까머리처럼 푸르게 자란 무덤 위의 잔디가 5월의 초록빛을 받아 더 안타깝고 슬프게 다가왔다. 지금은 이 공동묘를 포함한 이 지역에 지진 기념관이 세워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발 빠른 정책 시행과 재건 사업 역시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지진피해 지역은 대부분 이전의 피해를 복구했고, 또 거주 환경으로만 본다면 이전보다 훨씬 나은 상황으로 변모했다.
베이촨 주민들을 위해 새로 건설한 신베이촨은 중국 정부가 얼마나 사태 수습을 위해 부심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인근의 안현 외곽 일부에 4만명 규모로 지은 신도시는 어느 계획도시 못지않게 도로와 공공기관, 주거지, 학교가 잘 갖춰져 있었다. 공공기관의 건물을 창족자치현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이들의 전통양식으로 지은 게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뜻이겠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중국 정부는 재건은 99% 완료됐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얼마 전 지진 복구 현장을 취재했던 일본 NHK 기자가 일본 정부를 비판하며 중국 정부의 집행력을 부러워했다는 전언과 현인 클럽이라는 로마클럽이 결국 중국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하면서 ‘정부의 효율성, 집행력’을 들었다고 하니 ‘당-독재, 자본주의 국가’라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언제까지, 어느 수준까지 효율적일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또 하나의 놀람은 취재 전에는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이 지역 사람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이 상상 외로 크다는 것, 그리고 상흔이 치료되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가족의 상실과 해체가 가져온 충격, 그리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괴감 등으로 자살이 빈발했고 새로운 가정을 이룬 후에도 인간적 번민과 갈등이 지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창족자치현의 가이드는 현의 선전담당, 농업담당 공무원이 잇따라 자살해 현이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중국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전문 심리치료센터를 설립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현재 베이촨 지역에만 학교 32곳, 병원 22곳 등 모두 60곳에 전문 심리치료센터가 개설돼 운영되고 있다. 엄마·아빠의 죽음, 갑자기 사라진 언니·오빠·형들…. 죽음의 충격이 잠재된 아이들에게 이제는 공부보다 생명에 대한 교육, 심리교육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는 게 교사들의 설명이다.
“공산당이 없었으면 복구도 없었고, 새로운 보금자리도 불가능했다”는 대형 선전문구들, 또 오지의 깊은 산골일수록 더 많이 내걸린 오성홍기의 휘날림은 ‘자본주의 중국’의 작동원리가 아직은 ‘사회주의 중국’에 기반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베이촨 고등학생들을 비롯한 망자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