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그리고 '아랍의 봄'

[글로벌 리포트│중동·아프리카] 윤창현 SBS 카이로 특파원


   
 
  ▲ 윤창현 SBS 카이로 특파원  
 
봄이 올 줄 알았다. 광장에 뿌려진 수많은 희생자들의 피가 수십년 독재로 얼어붙은 땅을 녹일 거라 믿었다. 그래서 우린 그 혁명을 ‘아랍의 봄’이라고 부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둘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정상적인 제도정치의 틀을 회복해 갈수록 ‘아랍의 봄’이 길을 잃고 있다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적인 선거절차를 통해 내 손으로 뽑은 지도자가 그저 인간답게 살게 해 달라던 시민들의 소박한 요구를 실현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아랍 최대 국가인 이집트의 대선 풍경은 그래서 더 우울하다.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시민사회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은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고, 그 빈자리는 강력한 조직을 갖춘 보수적인 이슬람세력과 독재로 쫓겨난 무바라크 정권 후예의 몫으로 돌아갔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후보를 찾지 못한 시민들은 대거 투표를 포기했다. 60여 년 만에 치러진 사실상의 첫 자유선거는 46%라는 초라한 투표율 속에 이름조차 생소했던, 하지만 거대한 정치세력을 배경으로 한 이슬람주의자인 무르시 후보와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 샤피크가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무르시 후보는 시민혁명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거리에서 쓰러져 가던 순간에도 끝까지 좌고우면하다가 대세가 기울자 마지막 순간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비판에 직면한 최대 정치세력 무슬림 형제단 출신이다. 그가 과연 민주주의의 일반적 원칙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받고 있다. 무바라크 정권의 후예답게 “혁명은 이제 끝났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 샤피크 후보는 혁명 이후의 사회불안을 십분 활용해 안정을 외치며 표밭을 갈고 있다.

결선투표를 앞둔 이집트 시민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무르시를 찍자니 여성과 종교차별 등으로 민주주의 기본원칙이 훼손될 것 같고 샤피크를 찍자니 무바라크 정권 시절 부패혐의자 처벌 과거청산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혁명 이후 첫 대통령은 압도적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아니라 어느 쪽을 찍더라도 차악을 고를 수밖에 없는 난감한 처지다.

여기에 뭔가 미심쩍게 진행되는 독재자에 대한 단죄 역시 이집트 시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무바라크에겐 종신형이 선고됐지만 부패의 심장으로 지목돼 온 그의 두 아들은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분신이라 일컬어지는 샤피크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무바라크 역시 온갖 이유를 들어 사면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상황은 몇 가지 주어만 바꿔 놓으면 30여 년 전 우리가 겪었던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장면들과 놀랍도록 겹쳐진다. 시민들이 피흘려 쟁취한 직선제는 재야세력의 분열과 갈등 속에 군사독재정권의 후신인 노태우 정권의 탄생을 가져왔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취와 두 차례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그후 수십년 동안 경제민주화를 포함한 민주주의의 내용적 진전은 헌법 속의 선언적 조항을 지켜내는 것도 힘들 정도로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사법적 단죄를 받았다가 사면된 전직 대통령은 29만원 찍힌 통장 하나로 호가호위하고 있고, 그를 옹립하고 보위했던 하나회의 망령까지 다시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를 배회하고 있는 지경이다.

시민의 희생으로 쟁취했던 절차적 민주주의의 틀이 다시 시민의 목을 죄는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는 한국과 이집트를 포함해 시민혁명을 경험한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전공필수 과목쯤으로 보인다.

이처럼 비슷한 궤적을 그려가고 있는 이집트와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은 시민혁명이 그 자체로 ‘봄’이 될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꽃피고 새가 우는 봄이 되려면 동장군보다 혹독한 꽃샘추위를 몇 번은 겪어야 하는 것처럼 더 인간답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으려는 시민들의 싸움은 앞으로도 고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결국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80년 서울의 ‘봄’이 봄이 아니었던 것처럼, 아랍의 봄’도 길을 잃은 게 아니다. 그건 처음부터 봄이 아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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