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은폐 사건

제260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 / 오마이뉴스 이한기 기자


   
 
  ▲ 오마이뉴스 이한기 기자  
 
이미 죽은 이슈처럼 보였다. 의혹은 많았지만 물증이 없었다. 2008년에 불거진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꼬리만 잘린 채 몸통은 사라졌다. 특히 불법사찰 증거인멸의 최종 책임자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진경락 과장이라는 수사 결과는 초등학생도 웃을 일이었다. 결국 진 과장과 장진수 주무관 등 실무라인만 처벌받고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미궁에 빠졌던 사건이 우연같은 필연으로 되살아났다. 장진수 주무관의 입을 통해서다. 그는 이번 사건의 깃털 가운데 깃털이었다. 그러나 증거 인멸과 이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그를 통해 이뤄졌다. 사건의 핵심 증거들이 그 깃털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장 주무관을 통해 오랜 기간 동안 집요하게 사건의 진실을 틀어막으려고 했던 이명박 정권 윗선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드러났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팀은 진행자 김종배씨를 통해 장진수 주무관과 선이 닿았다. 올해 초에 만난 장 주무관에게 “당신이 정말 억울하고, 법적 해석을 다시 받고 싶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며 진실 고백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일부 사실만 털어놓았던 장 주무관을 계속 설득하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했다. 지난 3월 2일 민간인 불법 사찰 증거인멸 은폐 사건은 이털남을 통해 첫 보도된 뒤 한 달 넘게 새로운 뉴스가 잇달아 터져나왔다.

장진수 주무관의 증언과 사건 당사자들 녹취록을 통해 공개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번 사건에 최소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이상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까지 직접 보고됐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상의 부도덕적인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털남의 보도 여파로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의 코미디같은 ‘호통 기자회견’이 등장하기도 했다. “내가 몸통”이라는 이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 내용은 사람들로 하여금 적어도 그 윗선까지 개입된 사건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이털남의 연속 특종 보도가 이어지자, 일각에서는 ‘왜 찔끔찔끔 털어놓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털남팀도 한번에 다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기억의 퍼즐 조각을 맞추고, 녹취록을 정리하며 내용을 파악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증거들이 나올 때마다 가감없이 보도했을 뿐이다. 매일 방송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피말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털남의 보도 과정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의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와 가해자이자 또다른 피해자인 장진수 주무관이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 진심을 받아들이며 포옹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보는 이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아직도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그들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다고 해가 없어지진 않는다. 장진수 주무관의 용기있는 진실과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털남 방송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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