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 '대선 전략' 문건 파문

제260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취재보도 / 경기일보 이호준 기자


   
 
  ▲ 경기일보 이호준 기자  
 
지난 4월24일이었다. 경기도청을 출입하고 있는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도청에서 배포된 보도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날 보도자료는 다른 날과 달리 이면지에 인쇄돼 있었다. 사실 올해 초부터 경기도청은 새로운 공직문화를 만들고자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문서 등의 소비를 줄여 탄소배출을 감소시키자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난 이면지로 된 보도자료를 받아 보면서도 전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이면지를 한장 한장 넘기는 그 순간, 내 눈을 스쳐 지나가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박근혜’였다. 경기도청이 어떤 곳인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김문수 지사가 현직 지사로 근무하고 있는 곳 아닌가.

나는 도청 이면지에 ‘박근혜’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어떠한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이면지의 맨 앞장부터 살펴보게 된 나는 이 문서가 김문수 지사의 ‘이미지 개선 전략 문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이 문건에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김문수 지사를 직접 비교해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었으며, 김 지사가 서민 이미지를 갖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행방안도 자세히 담겨 있었다. 나는 이 문건이 경기도청 내에서 발견됐다는 점에 집중, 김문수 지사의 ‘관권선거’ 논란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했다.

이 문건이 다음날인 4월25일자 경기일보를 통해 세상에 공개되자 그 파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신문, 방송, 라디오 등 모든 언론매체에서 이 문건에 대해 연일 보도했고, 김문수 지사는 ‘관권선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사실 이 문건이 이렇게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문건이 공개된‘시기’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김 지사는 4월21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특히 이 당시까지만 해도 경기지사 직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었다. 그러나 다음날인 4월22일 김 지사는 도지사직을 유지한 채 대선에 도전하겠다며 돌연 입장을 바꿨다. 그 직후인 24일 이 문건이 발견됐고, 25일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결국 경기도민들이 ‘김 지사가 왜 그만두지 않지?’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할 때 이 문건이 공개됨으로써 “아! 경기도지사직을 유지하면 공무원 조직을 이용할 수 있겠구나!”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관권선거 논란에 휘말리게 된 김 지사는 공식석상에서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으며,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또 경기도의회 민주통합당 등 정치권에서는 김 지사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졌다.

결국 경기도 선관위는 이 문건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 5월9일 수원지방검찰청에 수사의뢰 했으며, 검찰은 5월 11일 경기도청 대변인실과 정책보좌관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기도청이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민선 들어서는 최초로 공직사회도 적지 않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모습이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 아무런 수사의 진척은 없는 상황이다. 나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끝까지 예의주시하는 한편, 경기도청 관권선거의 실체에 대해 스스로의 취재도 계속할 계획이다.

기자 생활을 처음 할 당시 선배들은 항상 ‘특종은 우리 주위에 있다’, ‘사소한 것에서 특종은 시작된다’라는 말을 많이 해주었는데, 이번 논란을 겪으면서 정말 특종은 주위에, 아주 사소한 것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사실 매우 민감했던 부분이었기에 이번 문건을 공개하기까지 주위의 많은 장애가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사명과 기자의 소신으로 지면을 할애해 주신 편집국장님과 정치부장님, 그리고 편집국 선후배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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