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밀누설 논란, 안보, 그리고 알 권리
[글로벌 리포트│미국] 성기홍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성기홍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6.13 15: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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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홍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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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밀누설 논란이 미국 대선가도에 정치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테러범들의 살생부 작성에 직접 개입하고 무인비행기(드론)를 동원해 이들을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이란 핵개발 저지를 위해 바이러스를 투입하는 사이버 공격에 나서라고 대통령이 극비리에 명령했다.”
이 같은 내용이 최근 뉴욕타임스(NYT)의 잇따른 `특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언론에 나지 않았더라면 국민들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을 다룬 영화에나 볼 수 있고, 상상속에서나 그려볼 법한 스토리였다. 드라마틱한 미국의 대(對) 테러 작전, 핵무기 확산 저지 작전은 미 정보당국에서도 사실 자체가 극비리에 분류돼 있고, 이 같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극히 제한돼 있다.
언론보도 이후 정치권이 떠들썩해졌다. 도대체 누가 이 같은 극비정보를 언론에 얘기했느냐는 것이다. 기밀 누설과 언론보도로 국가안보가 위태롭게 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 보도들에 앞서 백악관과 국방부가 1급 기밀로 분류한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 정보를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에게 흘렸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오바마 백악관’이 국가기밀을 정치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냐는 눈총도 있던 터였다.
공화당은 백악관의 `고의적인’ 국가기밀 누설이라며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말 재선을 목표로 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적 리더십, 단호한 결단력 등을 부각시키기 위해 백악관이 은밀하게 유력언론을 통해 기밀을 유포시켰다”는 게 공화당이 이 사안을 바라보는 프레임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모욕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어느 나라이든 정부 당국자들이 언론을 통해 정보를 `누설’(leak)하는 일은 있는 일이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당국자들은 `좋은 뉴스’에 여론의 관심을 모으도록 하고, `나쁜 뉴스’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해 `누설’을 활용한다. 새로운 정책이나 이슈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서도 특정 정책, 정보에 대한 공개적인 발표가 아니라 `누설’이라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안보 사안,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기밀사항이라면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미 하원 정보위원회 벽에는 정보 누설의 위험을 상기시키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그 포스터에는 ‘Loose Lips Sink Ships’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입을 가볍게 놀리면 배가 가라앉는다’라는 뜻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다른 나라의 통신을 엿듣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의 전함을 폭파시켰던 만큼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정보세계에서는 적국의 스파이를 통해 정보가 유출되는 것보다는, 기밀정보를 취급하는 내부 당국자의 실언 또는 고의적인 ‘누설’, 그리고 언론보도를 통해서 더 결정적인 기밀이 유출된다고 한다.
9.11 이후 미국의 최대 적인 알-카에다 그룹은 미국의 대(對) 테러 작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의 언론이나 인터넷 등 공개된 정보들을 샅샅이 모니터하며 대응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밀 누설이 이슈로 부각할 경우 국가안보 위해(危害) 주장이 당연히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언론 보도로 국민들의 목숨이 위험에 노출됐다는 주장이다. 때로는 수긍할만하고 염두에 둬야 할 측면이다.
하지만 기밀을 세상에 보도한 언론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 가치를 둘러싼 논쟁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이번 사안의 기밀 타당성 여부, 정치적 `누설’ 의도 여부와는 별개로, 특정 정보를 국가기밀로 분류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무차별적으로 너무 많은 정보들이 기밀로 분류된 게 아닌지, 그리고 정부의 활동을 국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에 대한 논쟁도 이뤄질 필요가 있다.
잭 골드스미스 하버드법대 교수는 이번 사건이 쟁점으로 부각되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란 핵무기 저지 사이버 공격 프로그램 등을 거론하며 “이들 프로그램을 기밀로 분류하는 것이 나름 가치가 있겠지만 투명성과 책임성, 공개토론의 장점 등 함께 고려돼야 할 다른 가치들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