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 채용에 응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한 방송기자를 만났다. 그는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MBC의 한 지인에게서였다. “시용기자 채용이 있으니 응시해보라”는 권유였다. 합격도 어렵지 않을 상황이었다. 평소 언젠가는 공영방송 MBC에서 일해보고 싶어한 그였다. 우리 인생에서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자는 결국 여의도를 등졌다. 왜였을까. 특별히 진보적 신념을 가지지도 않은, 불편부당한 보도를 추구하는 상식적인 기자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떳떳하게 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최소한 그를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여론은 찾아보기 힘든데도 김재철 MBC 사장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5명 해고에도 모자라 70명에 달하는 후배 기자를 대기발령 낸 그는 단순한 버티기를 넘어섰다. 임시직 기자, 시용 기자 등 희한한 이름의 직종을 발명해내면서 기자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 그의 머리 속에 미래란 없는 것 같다. 지금 이 파업의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술수만 가득할 뿐이다. 머지않아 찾아올 혼란에 빠진 보도국의 반목은 그의 안중에 없는 듯하다. 아니면 ‘문제 기자’의 DNA를 도려내고 ‘김재철 사단’을 채워 넣어 이 기회에 후환 자체를 없애겠다는 생각일까. 불로장생의 절대 군주도 아닌 임기 3년의 한 경영자가 벌이고 있는 일이다.

140일을 넘어선 MBC노조 파업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견해를 떠나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자 사회 파괴 행위는 남의 일이 아니다. 언론사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대기발령이 MBC에서 무더기로 이뤄지자 국민일보 사측도 18일 파업에서 복귀한 노조원 6명을 대기발령냈다. 일종의 유유상종이자 학습효과다. ‘할 말을 하는 기자’들에 대한 탄압은 어떤 언론사에든 전염병처럼 퍼질 수 있다.

그런데 MBC 사측이 채용한 시용기자의 면면에 우리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합격자들이 번듯한 방송사를 비롯해 한국기자협회 회원사에 몸담고 있는 현직 기자들이었다.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나 내심 다른 계획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 기자사회의 동료들을 대체하기 위한 인력을 자임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기자 공동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행위에 가담했다는 것은 실망 그 이상이다.

일터를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부당한 강제나 억압없이 자유의지에 따라 누구나 직업과 직장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실현된다. 지금 유례가 없는 MBC의 상황에서는 쫓겨나는 사람이나 채우는 사람이나 결국 권력을 쥔 자에게 억압받는 노예가 될 뿐이다.

우리는 한국기자협회의 8000명 회원들에게 파업 사태가 해결되기 전까지 MBC의 어떠한 채용에도 응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꼭 파업을 지지하지 않아도 좋다. 동시대에 함께 기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념을 떠나 마지막 남은 기자정신을 지킬 수 있는 생태계를 사수하기 위해서다.

“과연 내가 떳떳하게 일할 수 있을까”라는 한 기자의 고뇌는 이제 온전히 우리 모두의 몫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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