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나라에 불어온 SNS 바람
[글로벌 리포트│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7.04 15: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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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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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상관저 앞에서 탈 원전 항의데모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수상관저 앞에서 일반 시민들이 항의 집회를 가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은 “탈원전 결단을”,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피켓을 들었다. 주최자 측의 연사도, 대규모 스피커도 보이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담은 피켓을 만들어 와서 이를 외치고 해산했다. 참석자 중에는 유모차를 이끌고 나온 주부도 심심찮았다.
탈 원전 데모는 지난 3월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노다 총리가 칸사이 전력의 오이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하겠다는 원칙을 밝히고 난 후인 7월1일부터 참석자가 증가했다.
지난달 29일 항의데모에 대해서 주최자 측은 15만에서 18만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오사카의 칸사이 전력 앞에서 2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 밖에도 나고야, 나가사키, 구마모토에서도 시민들의 항의집회가 자발적으로 이뤄졌다. 7월1일에는 아오모리에서도 160여 명이 원전 재가동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지난 3월 원전반대 시위가 처음 열렸을 때는 고작 300명만이 참석했다. 석달 만에 참가자 수가 500배나 늘어났다는 계산이다. 한 주 전인 22일 집회 참석자 4만명에 비해서도 4배 이상 늘었다.
무엇이 동일본 대지진 때도 일본 정부의 뒤늦은 구호 대응에도 항의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던 일본 시민들을 수상관저 앞으로 불러 모은 것인가. 이런 역할을 한 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다. 트위터는 140자의 단문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는 서비스지만 정치적인 위력도 만만치 않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연말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으로 선거결과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최 측은 트윗을 통해서 항의데모 일정과 참가방법을 알리고 참가자들은 트윗을 통해 항의집회에 참가한 감상을 올렸다. 이렇게 집회 참가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2002년 반미데모와 비슷하다. 항의데모를 주최자 측은 데모의 성격과 관계없는 정치단체의 참가나 정치적 테마에 대한 플래카드는 삼가 달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자칫 데모가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처럼 소셜미디어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왜일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먼저 시민들의 여론을 대변하는 통로라는 언론 기능이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원전 재가동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이보다는 소비세율 인상을 둘러싼 정쟁보도에 열을 올렸다. 몇 명의 의원들이 세율인상에 반대하는 오자와 전 대표를 지지할 것인가. 전대표가 언제 탈당할 것인가. 국회가 언제 해산될 것인가에 집중됐다.
수상관저 앞 항의집회는 원전 재가동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각료회의가 열린 4월3일 이전부터 열렸음에도 일본 언론들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데모의 규모가 경찰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커지고 전력회사의 주총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마지못해 보도했지만 이도 일부 언론에 그쳤다. 아사히와 마이니치만이 지난달 30일 지면에서 겨우 항의데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뤘다. 아사히 신문은 30일자 조간에서 “원전 반대의 목소리, 항의데모 전국 확산” 제하의 보도에서 수상관저 앞 도로를 가득 메운 데모광경을 보도했다. 마이니치는 1면에 기사와 함께 이번 데모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이뤄졌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두 번째는 국민들의 정치참여 통로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수상관저 근처에서 열리는 항의집회는 정당이나 노조와 같은 단체가 주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각 단체들은 사전에 참가자 수를 파악해서 경찰에 전달하고 집회 후에는 정부에 항의문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번은 집회규모를 예측할 수 없고 집회를 주도하는 단체도 명확하지 않아 경찰이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신문방송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나라다. 정보화 선진국 중에서 예외적인 편이다. 그러나 이번 데모는 언론에 대한 일본인들의 신뢰를 크게 바꿔놓았다. 이런 인식에 가장 놀란 것은 참가자들 스스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