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탈자 방지" 조선일보 가판 해법
이달부터 '내부용' 3000부 인쇄…기자들, 기대반 우려반
이대호 기자 dhlee@journalist.or.kr | 입력
2012.08.01 15:29:15
‘이명박 전 대통령’, ‘김두관 전 경기지사’, ‘태풍사진 조작’. 7월 한 달간 연속으로 터지며 ‘1등 신문’의 체면을 구기게 한 조선일보의 ‘실수 3종 세트’가 결국 가판 제작이란 특단의 대책을 불러왔다.
조선일보는 오타와 실수 등 제작 사고를 방지하고 마감시간을 앞당겨 기자들의 퇴근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8월1일자 신문부터 가판을 제작한다고 밝혔다. 가판은 3000부 정도 인쇄하며 내부 회의·점검용과 일부 지방 배달용으로만 쓰인다. 지난 2005년 3월 폐지하기 이전의 가판처럼 서울시내 또는 외부 배포용으로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조선일보 한 관계자는 “시내에 배포하고 신문사들끼리 돌려보던 가판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오탈자 없는 완벽한 신문을 만들고 기자들의 여유를 찾아주기 위해 내부용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판 제작은 지난달 3일 ‘이명박 전 대통령’ 오타가 발생해 망신을 당한 후 대책을 찾는 과정에서 방상훈 사장이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판 제작에 따라 조선일보 편집국의 제작 스케줄이 오후 6시 지면강판, 6시30분 인쇄, 8시 지방발송에 맞춰 앞당겨진다. 기자들은 늦어도 오후 4시30분까지는 데스크에게 기사를 보내야 한다. 대신 가판이 인쇄되고 나면 정치부와 사회부 등 판갈이가 필요한 부서의 인원만 남고 나머지는 퇴근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조선일보 한 관계자는 “가판 제작이 정착되면 오탈자가 없고 팩트 체크가 확실한 질 높은 신문을 만들면서도 많은 기자들의 소원인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기자들은 일단 지켜보자는 기대와 함께 장밋빛 전망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높다. 회사 측 의도대로 마감이 당겨지고 일부 부서 기자들만이라도 가판 제작 후 퇴근할 수 있게 되면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분명히 있다. 7월까지 조선일보는 판갈이 과정에서 기사 수정 지시가 많이 내려오고 판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허다해 기자들 대부분이 52판이 마감되는 밤 11시까지 회사 내부 또는 인근에서 대기상태로 있었다.
그러나 자칫하면 가판이 사실상 하루에 신문을 두 번 만드는 굴레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존재한다. 마감을 앞당겨 가판을 제작한 기자가 퇴근이 아니라 판갈이를 위해 대기해야 할 때 나타나는 결과다. 지금처럼 판갈이 과정에서 기사와 편집이 완전히 뒤집히는 경우가 많으면 가판 제작이 노동강도를 높이고 노동시간만 늘릴 뿐이라는 인식이다.
조선일보 한 기자는 “편집국 간부들이 얼마나 판 바꾸기에 집착하는지 안다면 가판 후에도 정시퇴근은 희망사항일 뿐”이라며 “가판을 만들고 난 후 막판에 70% 이상 바뀌면 그게 어디 같은 신문이냐. 두 번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가판 제작이 2001년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가판을 폐지했던 흐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도 관심사다. 조선일보는 외부용이 아니라고 하지만 민감한 기사가 실리는 것이 예상되면 기업체와 정치권에서는 가판을 입수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가판 폐지의 취지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조선일보 한 기자는 “조선일보가 가판을 제작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예전처럼 가판을 구해보려고 기업체 등 여러 기관에서 줄을 설 것이 뻔하다”며 “오탈자를 바로잡는 많은 방법 중에서 왜 가판을 택했는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