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도로·건물 이름에 담긴 '통합의 코드'

[글로벌 리포트│미국] 성기홍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 성기홍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엊그제 워싱턴에서 마지막 출근길을 달렸다.
버지니아 매클린(Mclean)의 집을 나서 ‘웨스트모어랜드 가’(Westmoreland Street), ‘커비 로드’(Kirby Road), ‘돌리 매디슨 대로’(Dolley Madison Boulevard)를 차례로 거친 뒤 ‘조지 워싱턴 기념 파크웨이’(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way)로 질주했다. 다시 ‘루스벨트 브리지’(Roosevelt Bridge)를 건너 워싱턴 DC로 진입해 내셔널 프레스 빌딩의 사무실로 향하는 지난 3년간의 길이었다. 추억에 남을 아름다운 길이다.

공교롭게 출근길을 잇는 도로명은 거의 사람 이름들로 이어져 있다. 처음 이 길을 오갈 때 미국 초대 대통령 이름 말고 ‘누구 이름일까’, ‘이 사람 이름을 왜 붙였을까’ 언뜻언뜻 궁금해했던 기억이다.

웨스트모어랜드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육군 참모총장, 돌리 매디슨은 미국 4대 대통령의 부인 이름이었다. 내가 살았던 동네 매클린도 사람 이름을 딴 거다.

역사가 짧은 다민족ㆍ다인종 국가라서 애써 역사를 기억하고 사회를 통합하려 했기 때문이었을까. 미국 곳곳에서 사람 이름과 맞닥뜨리는 일은 흔하다. 아이젠하워 청사, 트루먼 빌딩, 케네디 센터 등 전직 대통령 이름을 딴 건물만도 워싱턴에 수두룩하다.

자칫 죽은 이든, 산 이든 사람의 이름을 공공장소에 붙이는 시도가 공동체를 분열시킬 때도 있다. 사회적 합의가 여의치 않거나 정통성 시비를 둘러싼 논란이 있을 경우가 그렇다. 대개 당파성의 프리즘이 투영되는 정치 때문이다.

그런 탓일까. 한국에는 스포츠스타의 이름을 딴 ‘박지성로’나 ‘장미란 체육관’은 있지만 정치 지도자의 이름을 딴 도로나 건물 이름은 찾기 힘들다. 물론 ‘세종시’나 ‘충무로’ ‘퇴계로’ ‘율곡로’가 있다. 어느 정파의 배타적 연고를 주장할 수 없는 위인, 현대 정치의 흐름을 초월한 인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일게다.

명명(命名)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쉽지 않은 게 한국의 현실이다.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건립할 당시 본관 중앙홀에 의회 지도자상을 올리기 위해 4개의 좌대(座臺)가 설치됐다. 1996년에서야 임시정부 의정원 초대의장을 지낸 이동녕 선생의 흉상이 올려졌지만 나머지 세 곳의 좌대는 여태 빈 채이다.

격동과 혼돈, 대립의 역사를 한국이 밟아왔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비록 싸워서 권력을 빼앗길 지언정 라이벌에게 순순히 명예까지 안겨주지는 않겠다는 대립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근현대사에 격동에 휘말리지 않았고 대립·분열을 겪지 않았던 나라가 어디에 있던가.
미국은 불과 150여 년 전 나라가 두쪽으로 쪼개져 62만명이 숨진 내전(남북전쟁)을 치렀다. 전직 대통령(2대 존 애덤스)이 후임 대통령(3대 토머스 제퍼슨)의 취임식 참석을 보이콧 할 정도로 오랜 정쟁의 역사도 갖고 있다. “극단적인 당파성 때문에 미국 의회 기능이 망가졌다”는 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립을 초월하고 통합을 지향하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들린다.
2차 대전 후 유럽이 최악의 식량난에 허덕이자 트루먼 대통령은 필생의 정적인 공화당 출신 전직 대통령 허버트 후버를 책임자로 기용해 전후 식량위기를 해결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민주당의 젊은 40대 케네디 대통령은 2차 대전 최고사령관 출신의 공화당 전직 대통령 아이젠하워에게 조언을 구했다.

미 연방 상ㆍ하원의 의원회관 건물 이름에는 모조리 의회 지도자의 이름들이 붙어있고, 의회 곳곳에는 50개 주(州)를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의 동상들이 숱하게 서 있다.

건물이나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동상을 세우는 것을 한낱 ‘상징주의’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대립과 분열의 현실에만 갇힌 채 공통의 가치와 유산을 찾고 기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존립 기반은 허약해질 것이다.

곧 서울로 향한다. 올해는 대선의 해이다. 정치의 계절이다. 통합보다는 대결의 기운이 더욱 분출할 수밖에 없다.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향하는 설렘 속에서도 두려움과 우려가 섞여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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