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의 올림픽 중계 혁명

[글로벌 리포트│영국] 황보연 한겨레 기자


   
 
  ▲ 황보연 한겨레 기자  
 
런던 올림픽이 막을 내릴 즈음인 지난 11~13일, 영국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모리’(Ipsos MORI)는 흥미로운 여론조사를 벌였다. 이번 올림픽으로 평판이 좋아진 인물 혹은 기관을 고르도록 한 것이다. 영국 왕실과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갔음은 물론이고 악명 높은 런던의 교통시스템이나 차갑다고 알려진 런던 시민들도 그간의 오명을 다소나마 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큰 갈채를 받은 주인공은 바로 영국 공영방송 BBC였다. 무려 응답자의 81%, 다시 말해 영국인 5명 가운데 4명은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BBC에 대한 호감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번에 BBC는 영국에서 올림픽 중계방송을 전담했다.

실제로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BBC의 활약은 눈여겨볼 만했다는 게 나라 안팎의 평가다. 일부 영국 언론들은 “60년 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이 처음으로 국민들을 텔레비전 주위로 모여들게 했다면 이번에는 런던 올림픽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1953년 대관식 방송중계가 텔레비전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2012년 런던 올림픽 중계는 본격적인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 진입하는 분수령이 됐다는 뜻이다.

BBC가 이번 올림픽 중계에서 강조한 것은 “시청자들이 모든 경기를 어느 장소에서건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도록 하라”였다. BBC는 우선 시청자들이 주로 관심을 갖는 하이라이트 경기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의 올림픽 경기를 고화질(HD) 생중계로 내보냈다. 이를 위해 무려 24개의 전용 채널이 동시에 가동됐고 총 2500시간 분량의 경기가 중계됐다. 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보다 1000시간 정도 늘어난 것이다.

방송시간이 대폭 늘었다는 것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외면받아온 비인기 종목까지 모두 생중계로 방송에 노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는 해설자를 전부 배치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은 자국의 경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고, 영국인들은 이전에 관심이 그다지 없던 혹은 지도 상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나라들의 경기까지 속속들이 골라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종전에 시도하지 못했던 방대한 콘텐츠의 제공은 BBC로서도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털어놓았다. BBC의 한 관계자는 “마치 우리가 항공관제사가 된 것과 같았다. 여러 비행기들의 이륙을 준비하는 동안에 또 다른 여러 대의 비행기들을 끊임없이 착륙시켜야 한다고 상상해보라”고 이번 프로젝트의 어려움을 묘사했다. 매개가 된 것은 종전에 날씨와 뉴스 등 각종 문자 정보와 추가 동영상 등을 서비스해 온 쌍방향 디지털 TV의 ‘레드버튼(Red Button)’ 서비스다. 이를 확장 적용해서 리모컨에 있는 빨간색 버튼 하나만 누르면 펜싱에서 농구까지 원하는 경기를 찾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중계방송은 온라인에 연결된 PC와 스마트폰, 태블릿PC, 커넥티드 TV 등을 통해서도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무료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했다. 시청자들이 집안 거실뿐만 아니라 사무실이나 야외 등 어디에서나 올림픽 중계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폰으로 올림픽 경기 콘텐츠를 즐긴 이들만 1200만명에 이른다. 소셜 미디어도 ‘디지털 올림픽’의 열기를 후끈 높였다. 우사인 볼트가 육상 남자 200m 금메달을 딴 직후 트위터에는 분당 8만 건의 관련 트윗이 올라와 또 다른 신기록을 추가했다.

각종 통계로 본 시청자들의 호응도 가히 폭발적이었다. 영국 인구의 90%가량인 5200만명이 다양한 기기를 활용해 최소한 15분 이상씩 BBC의 올림픽 중계를 지켜본 것으로 집계됐다. BBC의 올림픽 중계 전용 TV채널로 경기를 시청한 사람만 2400만명이나 됐다.

성공적인 올림픽 중계로 BBC는 상업방송들과의 경쟁에서도 당당히 어깨를 펴게 됐다. BBC의 시청률 상승은 곧바로 ITV 등과 같은 상업방송의 시청률 부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올림픽 기간에 BBC의 시청률은 ITV에 견줘 네 배 이상 높았다.

상업방송이 올림픽 중계를 진행하는 미국 언론들도 공영방송 BBC의 올림픽 중계에 찬사를 보냈다. 지난 5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미국 NBC의 시청자들이 경기 중계가 지연되는 데 대해 불평을 터뜨리고 있는 데 비해 영국 시청자들은 다양한 생중계와 미래 기술이 곁들여진 방송으로 경기를 즐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NBC의 경우엔 온라인과 유료 시청자에게만 생중계를 제공하고 광고수익을 고려해 황금시간대에는 7시간 전에 시작된 경기를 편집해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계권 협상에서 최고 시청률을 올리는 데만 주목해온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기술력의 발달로 보다 다양한 종목의 중계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BBC의 중계 사례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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