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시위, 민족주의, 마오쩌둥
[글로벌 리포트│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9.26 1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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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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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오위다오는 중국 땅이다”, “일본은 꺼져라”, “이날의 치욕을 잊지 말자”, “일본에 대포를 쏴라”.
중국인들이 국치일로 기념하는 만주사변 81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9월18일까지 열흘 넘게 이어지며 중국 전역을 휩쓴 반일 시위 과정에서 터져 나온 구호 중 일부다. 가히 모든 것을 삼킬 듯한 민족주의, 국가주의의 발흥이다.
중국정부는 사실상 시위를 방조했다. 철망을 치고 경찰력을 동원해 일본 공관들을 보호하기는 했지만 길목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았고, 철망으로 보호된 공관 앞길을 터 시위대의 행진을 허용했다. 일본 공관 앞에서 맘껏 구호를 외칠 수 있었고, 이 와중에 베이징과 선양의 일본 공관은 물병과 페인트 세례를 받기도 했다.
시위를 사실상 정부가 조직했다는 주장이나 시위대에 돈을 지급했다는 주장 등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중국 정부가 일본 공관 주변의 시위를 완벽하게 막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외신들, 특히 일본 매체들은 중국 정부의 배후, 의도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양산해내기도 했다. 중국 정부 자체가 시위대와 똑같은 주장을 외교부와 국방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내보내고 있으니 그런 관측과 의심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게 보인다.
사실 이번 시위 과정, 중국 정부의 연이은 강경 대응 조치 등을 보면 그간 정치, 경제적으로 부쩍 성장한 중국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2010년 중·일 갈등 당시 희토류의 수출 통제로 일본을 굴복시킨 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때보다도 자신감이 높아진 중국의 위상, ‘해볼 테면 한번 해보자’는 배짱까지 엿보인다는 것이다. 일본은 특사를 보낸다, 대화를 하겠다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중국은 조업을 명목으로 만척의 어선을 댜오위다오 인근 어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이들을 보호할 순시선, 또 함정까지 대기시켜 댜오위다오, 센카쿠 열도를 일촉즉발의 위기의 바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시위 과정을 통해 새롭게 떠오른 인물은 다름아닌 마오쩌둥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의 시위에서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대거 등장했다. 앞머리가 살짝 벗겨진 푸짐한 얼굴의 마오가 반일 시위대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반일 시위와 마오쩌둥! 알 듯 모를듯한 그 궁금함에 상하이 시민들은 ‘마오는 중국의 창시자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중요하다’, ‘마오는 일본을 패퇴시킨 상징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오의 초상을 들고 나온 것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수많은 붉은 홍기 속의 나타난 마오쩌둥!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이 잠깐 떠오른 것은 과한 반응이었을까?
홍콩의 일부 매체는 이를 두고 반일 시위 과정에서 드러난 현정부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하거나, 최근 홍가 부르기 등으로 좌파적 기치를 내걸다가 실각한 보시라이 사건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등의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어쨌든 마오의 등장은 개혁 개방의 성과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도농간의 격차,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최근의 조사 결과나 후진타오를 이을 시진핑 정부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좌파적 정책을 지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과 맞물리며 흥미로운 관심을 낳고 있다. 더욱이 세계 경제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수록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고, 영토 갈등으로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더욱 강화될수록 마오에 대한 향수는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가 최근의 반일 바람을 방조하면서도 불안하게 지켜보는 것은 바로 이런 우려 때문은 아닐까?
오는 29일은 중일 수교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두나라가 국교를 선언한 날,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되돌려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