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언론이 설 자리 없는 미국 대선
[글로벌 리포트│미국]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10.10 15:38:17
|
 |
|
|
|
▲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
|
|
보지 않은 것을 기사로 쓰는 게 어렵기는 미국 워싱턴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같은 대선 시즌에 기사를 발로 쓰는 건 간단치 않은 일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 근처에서 선거유세라도 하는 날이면 부담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여러 절차를 거쳐 행사장에 도착해서도 공식행사 시작 이후 두 시간을 기다려야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된다. 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면 하루의 낮이 거의 다 가는데, 이렇게 취재한 것마저 한국에서 뉴스가치가 높지 않다. 그래서 워싱턴 ‘현장’에서도 미 대선 기사는 현지 언론이나 평론가, 블로거들의 분석, 칼럼을 훑으면서 감을 잡아 작성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고민은 편향된 시각과 논리가 넘쳐나는 언론, 기사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을 인용하느냐에 있다.
미국에서 언론의 편향성을 얘기할 때 목소리를 높이는 쪽은 보수진영이다. 한국사회와 달리 진보진영이 주류언론을 장악하고 있어 자신들의 가치와 원칙이 조롱당하고 오도됐다는 것이다. 뉴욕,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등지에 근거를 둔 언론들이 대개 이런 주류언론으로 분류된다. 보수 언론인 글렌 벡은 최근 펴낸 ‘겁쟁이들: COWARDS’에서 폭스뉴스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폭스뉴스가 하루 종일 보수논리의 뉴스를 선전한다고 해도 주류언론에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롬니 후보가 주류언론에 의해 유권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파란 피의 몰인정한 상류층으로 묘사된 것이 일례로 들어진다. 진보언론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으나 언론의 메이저리그에서 진보진영이 많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진실에 가깝다.
지난 3일 밤 열린 미 대통령 후보 1차 TV토론회는 특파원 입장에서 현지 언론들의 필터링이나 간섭 없이 두 후보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날 미국 언론들의 보도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하지만 토론회를 직접 보지 않고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주류언론의 기사만 읽었다면 이후 롬니 후보의 지지율이 반등하는 사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토론회 뒤 보수진영은 진보 주류언론이 오바마 대통령을 거품 속에 앉혀 놓은 게 탄로났다고 주장했는데 꼭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의 거짓이나 왜곡된 발언은 미 언론의 편향성을 강화시키는 원인이다. 정치적 성향이 서로 맞는 정치인과 언론이 담합하면 이런 발언도 진실이 된다. 그래서 미국 정치에서는 ‘빨간색 진실’과 ‘파란색 진실’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공화당이 말하는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당을 위한 진실이다. 일부 언론과 기자들은 정치인이 제시한 수치나 발언을 검증하는 ‘팩트 체커스’를 운영해 진실을 가려내고 있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이마저 기자들의 정치 성향을 벗어나기가 힘들고, 뒤늦게 허위로 판명돼도 식어버린 이슈가 된다.
또 민주·공화당 색깔이 없는 중도는 인기가 없기 마련인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케이블 뉴스채널 CNN이다. 시청자들은 공정에 초점을 두려는 CNN보다는 폭스뉴스나 MSNBC를 선호한다. 폭스뉴스는 보수 시청자들을 위해 민주당에 불리한 기사를 앞에 편성하고, MSNBC는 그 반대로 편집해 진보 시청자들을 유인한다. 올 초부터 9월 중순까지 CNN의 프라임타임 시청자는 평균 57만7000명으로 MSNBC보다 25%, 폭스뉴스보다는 69%가 적었다. 편향성을 버리면 인기 하락은 물론 배고픔도 감내해야 하는 게 미국 언론의 현실인 것이다. 중도적인 매체는 물론 중도적인 취재원도 기사에서 배제되기는 마찬가지다. 워싱턴포스트의 옴부즈맨 패트릭 팩스턴에 따르면 2010~2011년 2년 동안 이 신문에 좌파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는 551차례, 우파 성향인 미국기업연구소는 284차례, 헤리티지재단은 235번 인용됐다. 그러나 중도적 싱크탱크인 미국평화연구소는 3차례만 언급됐을 뿐이다.
매일 같이 주류언론을 위주로 뉴스를 접하는 특파원 입장에서 이런 현실이 던지는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미국 안의 뉴스라고 해서 마냥 객관적이기보다 누구를, 어느 언론을 인용해 작성하느냐가 결국 기사의 편향성으로 직결될 수 있는 탓이다. 시사주간 타임의 리차드 스텐겔 편집장이 미국 정치 환경을 보면 믿게 되는 게 아니라 ‘믿는 게 곧 보는 것(believing is seeing)’이라고 했는데, 입장은 다르지만 그도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미국은 지금 냉전시대 때보다, 그리고 한국 사회보다 더 갈라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