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김 반장', 취재하러 가자"
오마이뉴스 故김영균 기자 추도사
한국기자협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10.10 15:44:45
지난 1일 지병으로 타계한 고 김영균 ‘오마이뉴스’ 기자의 노제가 3일 오전 5시30분께 서울 상암동 본사 빌딩 앞에서 열렸다. 이날 동료 기자인 최경준 기자가 낭독한 추모사를 요약해서 싣는다. 영균아!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네 이름을 불러놓고 한참을 담배만 피워댔다. 그리고 다시 네 이름을 부르려니 가슴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래도 다시 네 이름을 불러본다. 부르고 또 불러서 네 이름 가슴에 깊이깊이 새기려고 한다.
네 흔적이나 볼 수 있을까 해서 블로그를 들어가 봤더니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랬는지, 분류에는 이런 저런 목록이 있지만 모두 텅 비어 있었다. 대신 하늘을 보며 늠름하게 서 있는 네 사진 밑으로 시 한 구절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네가 평소 좋아하던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였다. 네 덕분에 나도 백석의 시를 엿보게 됐지. 나는 그 다음 대목이 더 좋더구나.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넌 사랑하는 게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늘 슬퍼했다. 술 마시면서 입버릇처럼 네가 내게 했던 말이다. 그래서 기자한다고. 그리고 넌 네 자신보다 사랑하던 후배들을 가슴으로 다그쳤다. 그렇게 하려거든 기자 때려치우라고. 그래서 또 나는 네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넌 천생 기자라고. 얼마 전 혼수상태에 빠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네 손을 잡고 내가 그랬지.
“취재하러 가자, 영균아.”
그리고 넌 산소마스크를 넘어서도 또렷이 들리도록 “응”이라고 말했다. 그래, 사경을 헤매면서도 넌 취재를 하러 가고 싶었던 게지. 그래서 넌 천생 기자다.
널 위해 만든 ‘김영균 펀드’…우리 마음에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넌 ‘오마이뉴스’ 기자다. 12년전 넌 부산에서, 그리고 난 전주에서 ‘오마이뉴스’ 지역판을 담당하며 함께 ‘오마이뉴스’ 창간에 참여했다. 그리고 1년 뒤 너와 난 나란히 서울로 올라왔고, ‘오마이뉴스’에 우리의 치열한 30대를 고스란히 바쳤다. 그리고 늘 우리는 함께했다. 네가 사회팀에 있으면 난 정치팀을 했고, 네가 편집부에 있으면 내가 사회팀으로 갔고, 네가 정치팀장을 맡으면 내가 사회팀장을 맡았다. 네가 노조 위원장이 됐을 때 나에게 노조 사무국장을 맡아달라고 하면서 했던 말 기억하니?
“우리가 젊음을 바친 ‘오마이뉴스’다. 우리가 열정을 바친 ‘오마이뉴스’다. 그래서 ‘오마이뉴스’는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오마이뉴스’ 노조는 달라야 한다.”
‘오마이뉴스’에 대한, 그리고 ‘오마이뉴스’ 동료들에 대한 너의 유별난 열정과 사랑 때문에 넌 ‘김 반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는, 그 사람 곁에는 네가 있었다. 대신 너를 위한 시간도 없었고, 너를 위한 고민도 없었다. 그래서 난 너를 ‘바보 김 반장’이라고 놀렸지. ‘바보 김 반장’, 늘 네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런 네가 너무나 부럽고 자랑스러웠다.
무엇보다 ‘오마이뉴스’를 사랑하는 네가 ‘오마이뉴스’와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고 우리 모두는 믿었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넌 이렇게 가는구나. 또 다른 길을 가는구나. 어차피 우리 모두 가야 할 길이지만 급한 성격답게, 넌 그렇게 먼저 가는구나.
어제 오늘 일하기 억수로 좋은 날씨다. 이제 취재하러 가자, 영균아. 예전에도 그랬듯이 난 여기서, 넌 거기서 그렇게 우리 일을 하자. 아직 못다 이룬 우리의 꿈을 위해서, 아직 못다 이룬 우리의 세상을 위해서.
영균이를 가슴에 묻으며
2012년 10월 3일 친구 경준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