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황우석 사태'와 요미우리의 오보
[글로벌 리포트│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10.17 14: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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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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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중 하나는 과학적 지식에 대한 판단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신뢰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최신 연구결과에 대해 진위를 가린다는 것은 전문가들에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비전문가인 기자가 난해한 최신 연구결과를 놓고 뉴스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전문가 자체를 신뢰한 나머지 연구결과가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쳤는지, 연구결과가 타당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기자들의 능력 밖의 일이다.
그래서 언론들은 연구자가 어떤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지 어떤 상을 수상했는지를 가지고 연구결과의 가치를 판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전세계로부터 주목받는 연구분야라면 내용을 하나하나 검증해 보기보다는 타사보다 빨리 기사화해야 한다는 특종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지난 11일 요미우리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모리구치 히사시를 포함한 하버드대 일본인 연구진들이 ‘iPS(유도만능 줄기세포)’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임상실험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하버드대의 모리구치 객원강사팀이 중증심부전 환자에서 iPS로 만든 심장근육 세포를 이식하는데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6명의 환자에 대한 임상실험은 성공적으로 이뤄졌으며 연구결과는 국제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고 과학전문지 네이처지에도 투고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모리구치는 하버드대학 객원강사 및 동경대학 객원연구원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iPS는 교토대학 야마나카 신야 교수(50)가 6년 전 개발한 꿈의 기술이다. 야마나카 교수는 존 거든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일본에게 19번째 노벨상을 안겨준 것이다. 장기불황, 영토문제 등으로 우울한 일본인들에게 노벨상 수상 소식은 낭보이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모리구치가 지난 8월부터 여러 언론사에 본인의 연구결과 취재를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초에는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에게 접근했고, 9월3일에는 마이니치신문 오사카 본사 기자에게도 접근했다. 같은 달 19일에는 요미우리신문 기자에게, 23일에는 마이니치신문 도쿄 본사기자에게 접근했다. 30일에는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접근했다. 미디어에 대한 전방위 접근전을 펼친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는 몇번의 취재 요청 메일을 받기도 했다. 아사히신문 기자는 취재 요청을 받고 도쿄대에서 모리구치를 인터뷰했지만 최종적으로 기사화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10월8일 교토대 야마나카 교수가 노벨상을 수상하고 나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요미우리가 태도를 바꿨다. 수상 결정 이후 3일 만에 1면 톱으로 임상실험 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날 신문에는 모리구치가 제공한 사진도 함께 실렸다. 요미우리는 1면 톱 기사에 기자 3명의 실명을 게재, 기사의 신뢰도가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석간신문 1면에서는 모리구치의 인간드라마를 부각시키는 한편 2면에서는 일문일답 형식으로 게재했다. 기사는 “일본에서는 (임상실험은) 힘들다”라는 일본의 연구상황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신의 스타일을 굽히지 않는 타입(의 연구자)”이라는 제목으로 모리구치 띄우기에 나섰다. iPS세포로 일본인이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고 임상실험도 일본인 연구자가 최초로 실시했다는 점은 좋은 기삿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문제는 학술적인 연구결과를 바라보는 언론의 접근법에 대한 3가지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연구자의 경력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하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모리구치는 도쿄대 의학부 iPS세포 뱅크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고, 하버드대 객원 연구원이라는 경력을 제시했지만 문제가 되자 뒤늦게 사실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 두 번째는 연구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도 문제가 터지자 본인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는데 급급했다. 마지막으로 포퓰리즘에 편승했다는 점이다. 노벨상 수상과 함께 최초의 임상실험 성공은 일본인들이 환호할 ‘더블 빅 뉴스’임에 틀림없다. ‘반 포퓰리즘’이라는 저서를 통해 일본을 병들게 하는 ‘독’의 하나가 포퓰리즘이라는 와타나베 요미우리 최고경영자의 지적이 자사의 오보로 빛을 바랬다.
일본 미디어들은 오보가 밝혀진 13일 이후 연일 오보 비판 기사를 다루는 등 또 다른 포퓰리즘에 열중하고 있다. 이번 소동은 모리구치씨의 귀국으로 더욱 커질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