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보도와 저널리즘에 국경은 있는가

[글로벌 리포트│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저널리즘에는 국경이 있는가. 영토문제를 둘러싼 한·중·일 간 갈등과 저널리즘의 역할을 생각하게 하는 심포지엄이 일본에서 연이어 열렸다. 지난 16일 독도문제를 테마로 일본 도쿄의 메이지대학에서 작은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일본에 있는 한국인 연구자 포럼(회장 유혁수 요코하마 국립대교수)이 주최한 제5회 한·일 사회문화 심포지엄은 독도를 포함한 한·일 간 영토문제를 테마로 삼았다. 애초에는 한·일 간의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겠다는 계획이었다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냉각되자 지금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일본의 연구자들이 고사하는 바람에 패널선정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기조발제자로 나선 오누마 야수아키 메이지대학 명예교수는 한·일 간 영토문제에서 갈등이 더욱 증폭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언론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언론보도가 영토문제의 본질은 아니지만 사태해결이 어렵게 된 데는 미디어의 책임이 무겁다고 꼬집었다. 오누마 교수는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일본이 기울인 노력을 한국 미디어가 평가하는데 너무 인색하다”고 지적한다. 일본 언론에 대해서는 “한국의 영토문제 주장에 대해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 한편 일부 미디어는 이를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열심”이라고 비판했다.

이틀 후인 11월18일 게이오대학에서 열린 ‘영토를 둘러싼 한·중·일 마찰과 미디어’라는 국제심포지엄에서 미디어가 국익을 대변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TBS 보도특집의 사회를 맡고 있는 가네히라 시게노리는 독도에 대해서 ‘시마네현 다케시마’, ‘일본 고유의 영토’, ‘불법 점거’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고, 센가쿠에 대해서는 ‘오키나와현 센가쿠 열도’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언론이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이면에는 언론이 국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전제가 은연 중에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언론이 자기확신을 가지고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기보다는 객관보도라는 원칙을 이유로 정부의 논리에 영합한 결과라고 하겠다.

산케이신문과 같은 우익적인 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8월 이전에도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해 왔다.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 이후 지금까지는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해 왔던 요미우리신문, 닛케이신문같은 전국지들은 물론이고 NHK같은 공영방송도 이런 표현에 동조하게 됐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또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일본 언론들이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토문제에 대한 일본 언론의 표현은 국민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키우는데 영향을 미치기 쉽다. 영토에 ‘고유’라는 표현이 적합한 것인가. ‘불법’이라는 표현은 어떤 법률을 위반한 것인가. 영토문제를 둘러싼 국제관계에 불법이란 표현이 타당한 것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검토 없이 이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다보면 영토문제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각은 이들 표현이 가지는 가치판단으로 고정되기 십상이다. 개념이 인식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일본 언론들의 표현은 양국민의 인식의 공유를 어렵게 하는 장벽을 높인다는 점에서 미디어의 책임론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1월1일 독도문제에 대해 한 면을 털어서 특집을 실은 아사히신문의 시도는 한국언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토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주장은 왜 엇갈리는가”라는 제목으로 1만2000자 분량으로 채워진 이번 특집은 기사량뿐만 아니라 양국 정부의 주장을 가감 없이 게재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집은 독도에 대해서 한국은 6세기부터 통치했고, 일본은 17세기부터 영유권을 주장했다는 내용도 비교했다. 양국이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역사적인 기록들 중에서 주요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앞서 아사히 신문은 10월30일에는 센가쿠 열도에 대해서도 중·일 양국간의 주장을 소개하는 특집을 싣기도 했다.

아사히의 시도는 국내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우익들의 반발을 사지도 않았다. 그러나 영토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인 것은 물론이고 국익을 대변하는 보도와 차별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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