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사장들의 불안한 미래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2015년 11월, 2014년 2월, 2015년 10월. 우리나라 3대 공영방송인 KBS, MBC, EBS 사장의 임기만료 시점이다. 길환영 KBS 사장은 논란 끝에 차기 사장 자리에 올라 24일부터 3년 임기에 들어간다. 김재철 MBC 사장은 지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해임안이 부결돼 “임기를 꽉 채우겠다”던 공언이 현실화될 상황에 놓였다. 사장 선임 일정이 진행 중인 EBS 사장 역시 차기 정권 중반인 2015년까지 국내 유일의 공영 교육방송을 좌지우지한다.

대선을 앞두고 불분명하던 3대 공영방송 사장들의 거취가 거의 확정됐다.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는 보장돼야 한다는 건 중론이다. 그러나 이번 3대 공영방송 사장의 거취 결정 과정은 수많은 이견을 묵살하고 한마디로 ‘일방통행’으로 진행됐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대선 이후 격랑이 예고된다. 과연 역사에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이었는지 의문이다.

KBS는 대선 이후로 선임 일정을 연기하자는 여론이 비등했는데도 결국 강행했다. 아니면 특별다수제, 한발 양보해 ‘특별의사정족수제’라도 채택해서 합의정신을 통해 사장을 선출하자는 최소한의 요구조차 깔아뭉갰다.

경쟁사들마저 “MBC는 정상이 아니다”라며 표정관리를 할 정도로 공영방송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는 MBC 역시 김재철 사장의 명운이 연장된 상태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김 사장 퇴진을 보장했다는 MBC노조의 폭로가 설득력이 있는 상황인데도 밀어붙인 모양새가 어째 석연치 않다.

EBS 역시 대선 이후로 일정을 연기하자는 목소리는 고려 대상조차 못 되고 있다. EBS를 관리감독하던 상급 정부기관의 고위직 인사가 ‘선수’로 뛰겠다는데도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해 이사회는 별다른 우려의 빛이 없다.

박근혜 후보 역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영방송 사장 선출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돌아가는 꼴은 딴 판이다. 여권 유력 후보의 국민 앞의 약속조차 안 먹히는 ‘아노미’ 지경인가. 아니면 자기 편 인사를 ‘알박기 사장’으로 앉혀놓고 공영방송사를 길들인 뒤 차기 사장은 그때 상황을 보자는 게 본래 의도였는지 알 길이 없다.

이명박 정부 5년은 공영방송에 재앙과 같은 시간이었다. 6·10 민주화항쟁 이후 방송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졌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를 제외하면 이같이 공영방송이 진통을 겪었던 기억은 없다. 그나마 그때는 ‘관영방송’의 오명에서 벗어나 역사의 전진을 이루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반면 최근 5년은 어떤 의미로든 퇴행을 가져온 ‘아비규환’이었다는 점에서 암흑의 시대였다. 설령 지금까지의 방송민주화 과정에 어느정도 시행착오가 있었다치더라도 이를 ‘전무’(全無)의 상태로 환원시킨 현 정권의 방송정책은 피의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을 가져올 뿐이었다.

지금 이렇게 뽑힌 사장 체제 하의 공영방송들이 지긋지긋한 갈등을 5년 더 연장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둘러싼 끝없는 논란들이 사장 선출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였다. 그런데도 짐짓 모른 체하며 반대를 무릅쓰고 친여 인사들을 밀어넣는 이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결국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보이지 않는 손’이 벌써부터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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