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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 전 한겨레 기자 | ||
영국에 처음 간 한국 사람이라면 신문을 넘겨보다가 눈을 의심하게 된다. ‘더 선’을 필두로 한 타블로이드지들이 거의 매일 신문의 3면에 큼지막하게 여성의 세미 누드 사진을 싣기 때문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성 모델들은 대부분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다. 포즈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 외설스러운 쪽에 가깝다. 이런 낯뜨거운 사진들은 그날 주요 뉴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신문사들은 단지 ‘판촉’을 위해 이런 사진을 매일 게재하고 있다. 이렇게 얼굴 두꺼운 편집을 오래도 했다. 이날은 이 신문이 3면에 여성 사진을 실은 지 정확히 42년이 된 날이었다.
물론 영국이 한국과 매우 다른 성문화를 가졌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쉽겠지만, 이런 편집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전통인 것은 사실이다. 영국 안에서도 비판이 있었다. 2010년까지 무려 28년 동안 영국 하원의원을 지낸 클레어 쇼트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는 ‘더 선’의 관행에 제동을 거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지난 1987년에 제출했지만, 결국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영국 하원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비난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2000년대 들어서 그는 다시 ‘더 선’을 향해 포문을 열었지만, 이 신문은 대놓고 쇼트 의원을 향해 ‘질투심 많고, 뚱뚱한’ 여성으로 비아냥거렸다. 당시 신문을 보면, ‘더 선’의 말은 뻔뻔한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3면에 나오는 여성들은 모두 지적이고 활동적이고, 자신의 일을 즐기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우리 신문에 나온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우리 독자들은 남녀 불문하고 그들을 보고 즐기고 있다.…그러니 쇼트 의원이 더 할 말이 없다면 그냥 달나라에나 가라.”
‘더 선’의 막무가내식 태도가 어떻게 영국 사회에서 40년 넘게 통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더 심각한 것은, 문제가 ‘더 선’ 같은 대중지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자가 지난 8월 영국에 온 이후 보게 된 영국의 신문들을 보면서 받은 주관적인 인상은, 전반적으로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판매 부수는 많지만 질은 떨어지는 ‘더 선’이나 ‘데일리 미러(Daily Mirror)’ 같은 대중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세계적인 정론지라고 일컬어지는 ‘더 타임스(The Times)’나 ‘가디언(The Guardian)’도 기대보다는 떨어진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
한가지 예만 들어보자. ‘더 타임스’는 지난 9월 영국 윌리엄 왕세손의 부인인 케이트 미들턴의 상반신 노출 사진이 파파라치에 의해 공개됐을 때, 6~7면에 걸쳐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그런데 분석의 내용이라는 것이 왕세손비를 몰래 찍은 파파라치가 도대체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어디에서 찍었을 지를 그래픽까지 곁들여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관음증적인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분석 기사가 세계 최고의 정론지의 ‘품격’에 맞는지 의문이다.
원인이 궁금했다.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한글 자료를 보게 됐다. 유동주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쓴 ‘루퍼트 머독 인물평과 그의 사업방식’이라는 흥미로운 글이었다. 글의 한 대목이다.
“오늘날 영국인들 사이에서 머독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고급지라도 머독이 한 번 손에 넣으면 저속한 대중지로 전락해 버린다’는 악명 높은 평판을 받고 있다… 오늘날 머독이 두려운 인물로 간주되는 이유는… 그가 일단 자기 수중에 넣기만 하면 질적으로 형편없이 오염되는 미디어로 만든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머독은 지난 1969년 ‘더 선’을 인수했다. 같은 해 신문의 3면에 문제의 사진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가 소유한 뉴스인터내셔널사는 지난 1981년 ‘더 타임스’와 ‘더 선데이 타임스(The Sunday Times)’를 인수했다. 탐욕스러운 자본가의 전형인 그의 손에서 영국의 언론사들은 적지 않게 왜곡되고, 타락했다.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