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옌, 류사오보, 그리고 중국

[글로벌 리포트│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1980년대 말 개봉된 장이머우 감독의 데뷔작 영화 ‘붉은 수수밭’은 그 강렬한 붉은 색채만큼이나 깊은 인상으로 중국을 서방에 알렸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2012년,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을 통해 중국을 들여다본 서방 대중이 보내는 뒤늦은 선물이겠다.

모옌(莫言)은 그의 필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런 그의 문학상은 그의 문학에 대한 상찬과 관심으로 끝나지 않고 중국의 인권문제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바로 그에 앞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류사오보 때문이다. 천안문 사태에도 참여했던 류사오보는 2008년 ‘공산당 1당 체제의 종식’을 주장하는 이른바 ‘08 선언’을 주도한 죄로 체포돼 11년 형을 언도받고 복역중이다. ‘국가전복선동죄’로 복역중이던 그에게 서방은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모옌의 노벨상 수상은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투옥중인 류사오보에 대한 그의 입장에도 관심을 증폭시켰다. 특히 모옌이 현재 중국 작가협회의 부주석을 맡고 있는 점, 그럼에도 그간 언론검열, 인권탄압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입장 표명을 유보해와 그의 노벨상 수상이 ‘잘못된 것이다’라는 목소리도 적잖이 분출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의 입은 더욱 주목받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는 노벨상 수상 선정 직후 “류사오보의 조기 석방을 바란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다시 “말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돌아간 듯하다. 노벨상 수상을 위해 찾은 스톡홀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선 이전 보다 훨씬 더 많은 중국의 검열제도, 류사오보와 관련된 질문이 제기됐지만 그는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언론에 대한 검열제도에 대해선 “어느 국가에나 있는 것, 기준과 방법이 다를 뿐”이라며 중국의 검열제도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류사오보의 조기 석방을 바란다”는 이전 발언을 다시 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바쁜 사람들이 귀한 시간을 내 왔는데 반복할 필요가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또 2년전 노벨상 수상자 134명이 류사오보의 석방을 탄원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지지하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독립적이었다. 그게 내 방식이다. 누군가 나에게 뭔가를 강요하면 나는 절대 그것을 하지 않는다”며 계속된 관련 질문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노벨문학상은 중국에 준 것이 아니라 나 개인에게 준 것이다”, “이번 노벨문학상은 정치적 승리가 아니라 문학의 승리에 준 것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사실 모옌에게 이처럼 집요하게 류사오보 문제를 걸고 들어가는 것은 가혹한 게 사실이다. 또 류사오보 문제를 넘어, 중국의 검열문제, 인권 문제, 더 나아가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파고 든다면 모옌의 문학, 문학상은 곧 잊혀지고 그에 대한 정치적 평판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무엇보다 모옌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언론이, 특히 서방 언론이 그에게 중국의 현실을 캐묻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왜곡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최근 공개된 류사오보의 부인 리우샤의 연금 생활은 이런 생각들을 더 확산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왜 가족에게까지 이런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것인가? 최근 AP통신은 베이징 자택에 2년 넘게 연금 중인 리우샤를 인터뷰하는데 성공했다. 삭발한 채 거동조차 불편해 보인 그녀는 취재진에게 놀라움과 슬픔을 쏟아냈다.

일주일에 한번 장에 가는 것, 한달에 한번 남편 면회가는 시간이 인터넷과 전화도 끊어진 그녀에게 주어진 ‘자유’이다. 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그녀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파헤친 실존주의 작가 카프카도 이보다 더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상황은 묘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절규했다.

어린시절 보리이삭을 몰래 줍던 어머니가 관리원에게 들켜 두들겨 맞던 모습을 가장 가슴 아픈 일로 기억하고 있다는 모옌.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과정에서 새롭게 경험한 중국의 ‘국제적 현실’을 그는 이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그의 회견에 자못 실망했으면서도 그의 이후 작품에 기대를 거는 것은 역시 ‘말이 아닌 글로 말한다’는 바로 그 ‘모옌’(莫言)에 대한 기대 때문이리라.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