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진짜 물러나야 할 사람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12.12 14:56:20
“이봐! 기사나 잘 써.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기자들은 언론사의 수뇌부가 이런 ‘방패’가 돼주기를 원한다.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기사 자체의 가치에 따라 평가받기를 바란다.
그런데 공영방송 KBS에서는 최근 정반대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켜야 할 이사회 이사들과 사장이 오히려 대선후보 검증 프로그램을 제작한 일선 기자들을 “편파적”이라고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선후보진실검증단장은 보직을 사퇴했다. 분노한 기자들은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이사들과 사장의 지적에서 일리(一理)를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다. 이 보도는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편성제작회의 등 여러 절차를 통해 공정성을 점검받았다. 더욱이 요즘 KBS 분위기에서 특히나 야권 후보에게 유리한 방송을 만들기는 ‘미션 임파서블’ 아닌가? 방송을 탄 보도를 본 사람들의 평가도 그렇다. 후보별로 분초까지 맞춰 형평성을 고려했다고 한다. 무엇이 편파적이라는 소리인지 의아한 표정이다.
KBS 보도국 구성원 사이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이번 사태만큼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자신들에게 번듯한 직함을 준 ‘그분들’에 대한 과잉 충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사들의 행태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평소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던 보도국 국장단까지도 입장을 따로 냈다. 물론 후배들의 대선보도를 앞둔 제작거부 결의를 우려하는 말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KBS 이사회는 제작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려는 외부의 시도를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어주기 바란다”는 부분이 더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KBS는 3년 전부터 KBS 출신들이 사장을 맡기 시작했다. 지난달 임기를 시작한 길환영 사장도 KBS 출신이다. KBS 안에서는 ‘선배 사장’이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여론이 강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선배 출신 사장들은 기대 밖이었다. 특히 길 사장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립서비스라도 “내가 자리를 걸고 외풍을 막겠다”는 선언은 못할망정 책임을 일선 기자들에게 돌렸다. KBS의 유일하다시피한 대선후보검증 프로그램이 방송 전부터 보류되는 등 진통을 겪더니 결국 제작거부까지 이르는 상황을 초래했다. 길 사장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영방송 KBS는 한국 언론계의 맏형이라는 말을 듣는다. 국민들이 KBS에 수신료를 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든 자본이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청정 언론’이 돼달라는 뜻이다. 더욱이 요즘 언론계 현실이 그렇지 못해 KBS의 책임은 더 크다. 그런데 회의 안건에도 없던 보도 문제를 일부 이사들이 고집해 보도 책임자까지 불러세워 놓고 위력을 행사하는 풍경은 참으로 기괴하다. 한술 더 떠 사장은 이사들을 거들고 나섰다. 수신료에 담긴 의미를 왜곡해도 너무 왜곡하는 일이다.
물러나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이런 파문을 초래한 KBS 일부 이사들부터 스스로 거취를 정리해야 한다. 길환영 사장도 자신 스스로가 외풍이 될 수밖에 없다면 진지하게 앞날을 고민하기 바란다. 그렇지않으면 KBS는 대선 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숙원인 ‘수신료 현실화’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