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방송의 공공성이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구로 방송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췄고 방송의 독립성과 공익성은 흔들림없이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

2008년 3월26일, 최시중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이 취임식에서 토해낸 사자후다. 수많은 언론사 관계자들이 앞 다퉈 줄을 지어 ‘알현’을 청해야 했던 ‘방통대군’의 등장이었다. 수장의 위세와 더불어 방통위는 21세기의 미디어 권력기관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 방통위의 현실은 몰락한 로마제국처럼 처참하다. 이름 대신 수감 번호로 호명 받으며 창살 너머 세상에서 들려올 ‘특사 낭보’를 고대하고 있는 한국판 괴벨스의 운명이 그 현실을 대변한다. 또한 15일 발표된 정부조직개편안 결과 방통위는 규제만을 전담하는 반쪽 기구로 축소되는 충격을 입었다.

방통위의 지난 5년은 ‘방송과 IT의 잃어버린 5년’으로 요약된다. 그 세목을 열거하는 것은 이제 구문 중의 구문이다. 따라서 방통위의 위상 추락은 예견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조직개편 과정을 보면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 미디어 관련 기구 설립에 대한 논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1999년 통합방송법 제정에 따른 방송위원회 출범을 위해 방송개혁위원회가 가동됐다. 세계적인 방송-통신 융합 추세에 따른 융합기구 필요성이 대두되자 참여정부 말기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활동하면서 공론장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번 방통위의 개편 과정은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 사이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새롭게 출범할 정부가 방송통신정책에 대해 어떠한 철학이 필요한지 토론할 기회도 없었다. 박근혜 당선인의 후보 시절 공약집에는 ‘ICT 전담부처 설립 검토’라고만 제시됐을 뿐이다. 미디어 분야는 정보통신의 한 항목으로 격하됐다. 미디어는 수익 가치로 환산되는 콘텐츠로만 이해됐다. 인수위에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있는 인물은 둘째 치고 미디어 전문가가 거의 눈에 띄지않는 것도 불안한 대목이었다. 산업 편향의 철학과 효율성만을 우선하는 행정편의주의, 부처 간의 이해 쟁탈전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된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일단 합의제 위원회가 존속하게 된 것은 다행이나 최선은 아니었다. 물론 방통위에 원죄가 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처럼 법적으로 독립된 방송통신기구가 합의제 정신을 더 발전시켜 규제와 진흥을 관할해 나가야 한다는 관점에서라면 이번 개편안은 퇴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획정될 것이 많다. 특히 규제 권한이 어떻게 나뉘어지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산업 진흥과도 연관되는 방송 인허가권 등의 사전 규제 권한이 독임제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로 넘어갈 경우 미디어 시장은 방송의 공공성과 여론 다양성이 후순위로 밀리고 대자본 중심의 급격한 산업 논리로 재편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사전 규제가 대폭 완화되는 대신 사후 규제를 담당하는 방통위가 기존의 관성을 유지한다면 대자본 미디어만이 살아 남는 ‘주라기 공원’ 식 생태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지난 5년을 반성할 때 중요한 가치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담보할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새 정부가 앞으로 미디어의 미래를 가늠할 세부적 논의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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