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한마디가 전 세계보다 무겁다'

[글로벌 리포트│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2013년 새해벽두에 중국의 남부지방 광동성 광저우에서 발생한 한 언론사의 파업은 사회주의 중국의 갈길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진실 한마디가 전세계보다 무겁다.” “一句眞話能比整個世界的分量還重.” 이들을 지지하는 글 중에 나온 이 한마디는 중국은 물론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300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는 인기 여배우 야오천(姚晨)이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린 이 말은 러시아의 작가 솔제니친이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남긴 소감으로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 강렬한 한마디는 결국 중국 당국을 물러나게 만든 힘이 됐다. 야오천의 공개지지 이후 유명 배우, 작가, 지식인들이 지지 목소리를 냈으며 광저우 남방주말 언론사 앞에서는 연이어 파업 기자들을 지지하는 지원 집회가 열렸다. 비록 이들은 많아야 20~30명으로 시위로는 적은 숫자였지만 그 파장은 엄청났다.

결국 정치적 부담이 국내외적으로 가중되자 중국 당국은 파업 사흘만에 유화책을 제시해 수습에 나섰다. 남방주말의 편집장과 개입 검열 의혹을 불러일으킨 광저우시당의 선전부장도 물러나게 하고 기자들의 책임은 묻지 않겠으며, 향후 관행적 검열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이들의 약속이 지켜질 것인가에는 많은 의구심이 있고 감시 시스템이 상시화된 사회주의 중국에서 당장 가능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 사태에서 놓쳐선 안되는 점은 이 과정에서 노출된 논란과 쟁점들이다.

애초 문제가 된 것은 남방주말 신년호의 특집기사였다. 기자들이 준비한 제목은 “中國夢 憲政夢”(헌법에 의한 통치가 중국의 꿈이다)이었으나 감상적인 “追夢”(꿈을 쫓아서)로 바뀌었고, 내용 또한 법치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한 것에서 당을 찬양하는 글로 대폭 바뀌었다.

파업 후 기자들이 공개한 지난 한해 당의 검열로 삭제, 수정된 건수는 1034건, 주간지임을 고려할 때 매번 20차례 정도로 상시적, 전면적이라 할 만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이런 만성적 검열 시스템 아래에서 왜 신년호 검열에 기자들은 그처럼 분노한 것일까?

역시 권력 변화 시기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새로운 권력체제에서 묵은 문제를 본격 제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기자들이 택한 “헌법에 의한 통치가 중국의 꿈이다”라는 말은 다름 아닌 새로운 지도자 시진핑 본인의 말이었다. 최고지도자의 직접 언급과 개혁적 행보에 기대를 가진 기자들은 희망찬 포부를 신년호에 담으려 했으나 당은 이를 구태의연한 선전물로 대체해 버렸으니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최고지도자 시진핑과 당검열과 사상을 관장하는 류윈산 상무위원간의 노선 갈등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 것이다. 류윈산은 사태 이후 강경한 해결 지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태는 알려진 대로 유화적 방식으로 접점을 찾은 것이다.

물론 시진핑 역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야말로 중국의 유일한 길”이라며 사회주의 노선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만을 두고 새로운 지도체제 내부의 노선 갈등으로 해석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지난번 반일 시위 과정에서 대거 등장했던 마오저뚱의 초상화가 이번엔 파업을 비판하는 시위에 등장하고 이들의 배경에 보시라이 문제 해결에 불만을 품고 있는 ‘좌파’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점은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남방주말을 간첩언론이라고 거칠게 비판했다. 공산당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오히려 당총서기 시진핑의 개혁적 행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가능성도 엿보이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중국 언론 환경의 변화이다. 남방주말에 이어 베이징 신경보에서도 검열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등 언론 자유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앞서 봤듯이 인터넷의 힘이다. 남방주말 사태 이후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넘쳐났으며 무려 5억이 넘는 네티즌이 이에 대한 의견을 남긴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이런 환경 변화는 다시 언론 종사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남방주말 사태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한 투쟁으로 쌓아온 언론자유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 상황은 사회주의 체제 언론의 한계가 명확한 소박한 투쟁에도 가슴앓이를 하게 만든다. 사회 곳곳에 피어나는 독재에 대한 향수, 파시즘의 그림자들. 앞다퉈 영혼을 팔겠다고 나서는 저 부나방같은 언론인들.
독재는 결코 양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파시즘은 결코 진실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애국과 충성, 그리고 복종이다.

“진실 한마디가 전세계보다 무겁다.” 다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유신독재의 괴물로 돌아가려는 위기의 순간에 한국 언론에 주는 이보다 무거운 경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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