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바로알기 운동, 여전히 유효하다

[언론 다시보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7월 26일부터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해 러시아를 방문했다. 20여일에 걸친 러시아 방문길은 김 위원장이 북한의 실질적 국가수반인 국방위원장 자격으로 첫 해외 방문이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고 시간을 다툰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과는 정반대로 시속 50∼60㎞의 느릿느릿한 기차여행으로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횡단했다는 점에서도 호사가들의 주목을 끌었다.

국내 언론을 비롯, 서방 언론들은 북한과 러시아측의 철저한 통제로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취재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이번 취재 보도 과정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비록 취재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무엇보다 유감스러웠던 점은 지난해 6·15 정상회담 이후 색안경을 쓰고 북한을 보는 고질병이 약간 개선되는 듯 하다가 다시 원위치한 듯 보인 점이다. 국내 언론이 의도적으로 색안경을 쓰고 이번 사안을 보도하려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직도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드러난 것만을 다루다 보니 부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고 만 것이다.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전개되기 시작했던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언론계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북한)과 러시아가 4일 발표한 모스크바 공동선언에서 “조선은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수가…초미의 문제로 된다는 입장을 설명하였다”고 하고 “러시아측은 이 입장에 이해를 표명하였으며…”라고 천명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에서는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워졌다. 한나라당 등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는 측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6·15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들은 얘기와 정반대라면서 김 대통령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거나 김 위원장에게 속은 결과라고 맹공을 가했다. 여당이나 정부측에서도 이 문구를 갖고 정쟁을 벌이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방어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한갓 정쟁거리로 삼는 야당측이나 대통령의 설명과 다르다고 해서 쩔쩔매는 여당측이나, 여야간의 공방을 충실히 전달만 하고 있는 언론이나 주한미군에 대한 북측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제대로 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

북한은 주한미군이 영구히 주둔하는 데는 반대 입장이다. 그렇다고 당분간 주둔하는 데 대해서도반대만 일삼는 것은 아니다. 북측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전제하에 당분간 있어도 좋다는 것이다. 지난 94년 4월 북한은 `새로운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미국에 제의한 데 이어 96년 2월에는 `잠정협정’ 체결을 제의했다. 이 제의는 한반도에서 무장충돌과 전쟁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이뤄졌으며 조선(북한)과 미국 사이에 공동군사기구를 설치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미 공동군사기구는 주한미군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주한미군을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92년 김용순 당시 노동당 국제부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당분간’ 주한미군 인정 입장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북측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평화유지자로서의 역할이라면 주한미군을 용인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이렇듯 북측은 정상회담 전부터 비록 조건부이긴 하나 주한미군을 인정해 왔으며 정상회담을 계기로 태도가 확 바뀌었다거나 러시아 방문에서는 또 뒤집었다가 하는 주장들은 사실과 다르다.

주한미군 문제 등 남북간 현안에 대해 북측이 남측 희망이나 의사대로 움직인다면 더 이상 통일을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미 통일된 상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남측의 잣대로 북측을 재단하려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오만하고 어리석은 태도는 그만 버려야 한다. 그 전에 `조선’이라는 국가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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