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후회
[스페셜리스트│외교·통일] 이하원 조선일보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이하원 조선일보 외교안보팀장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3.03.13 13: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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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원 조선일보 외교안보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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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의 외아들이 정계에 입문한다는 뉴스를 들은 후, 2001년 그를 인터뷰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부토 전 총리는 인터뷰를 위해서 만났던 외국의 지도자급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 중 한 명이다. 2001년 5월 2일 기자는 서울의 최고급 호텔에서 얼굴이 유달리 하얀 부토 전 총리와 악수했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화여대 강연을 위해 방한했었다. 영국식 악센트의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화려하고 당당했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망명 중인 정치인이 어디에서 돈이 나서 이렇게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실망감이 잠깐 스쳤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부토 전 총리는 첫인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내실 있는 인터뷰를 이끌어 나갔다. 그는 한국이 군정(軍政)을 극복한 것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파키스탄의 민주화에 대한 지원도 요청했다. “남편은 5년째 갇혀 있으며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있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고난을 이겨내는 나의 리더십이 조국 파키스탄을 변화시킨다”는 말도 했다.
부토 전 총리와의 인터뷰 핵심은 파키스탄과 북한과의 관계였다. 기자가 “한국과 미국정부는 파키스탄이 북한과의 협력을 통해서 미사일, 핵무기 문제에 대해 협조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질문했다.
부토 전 총리는 1988~90년, 1993~96년 두 차례 총리로 집권할 때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 기술을 북한에 수출하고, 북한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던 미사일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에 대해 기다렸다는 듯이 분명한 언급을 했다.
“그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내가 지도자로 있을 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실수를 하고 잘못된 판단을 했어요. 과거에는 미사일이 파키스탄을 위대하고 강하게 만든다고 믿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입장을 바꿨습니다.”
기자가 눈을 반짝 뜨는 사이에 그녀의 말은 계속됐다. “나는 이제 미사일보다 경제, 시장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내가 집권하면 비확산분야에서 신뢰구축조치를 취하고 싶습니다. 국제사회가 파키스탄을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을 만났을 때 환대(歡待) 받았다는 말도 했다. 이를 제외하고는 재임하고 있었던 북한과 파키스탄 관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를 발전시키는 대신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집중한 자신의 정책을 후회한다는 말로 변화된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 이틀 뒤 게재된 부토 전 총리의 인터뷰 기사에는 ‘미사일로는 강국(强國) 못 만들어, 파키스탄 민주화 지원 희망’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부토 전 총리는 2007년 12월 파키스탄 총선 유세 중 자살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직후 북한은 관영 방송을 통해 추도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부토 전 총리의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내용의 조전(弔電)을 보냈다.
북한은 아마도 부토 전 총리 시절 양국 간 비밀리에 진행된 WMD 협력을 상기하며 조전을 보냈을 것이다. 부토 전 총리가 망명 후 핵과 미사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경제와 국제사회의 신뢰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후회한 것을 몰랐던 것 같다.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 가능한 장거리 로켓을 쏜 지 두 달 만에 핵실험을 다시 감행했다. 연일 ‘핵 불바다’ ‘핵 선제타격’을 언급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아직 만 서른도 채 되지 않은 그에게 부토 전 총리가 했던 후회를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