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재철'은 안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3.03.27 15:52:19
MBC 김재철 사장이 해임됐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권력의 비호 아래 방송민주화의 역사를 퇴행시키고 50년 관록의 공영방송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한국 언론계의 폭군’도 종말을 피할 재주는 없었다.
지난주 본보가 김재철 사장에게 스스로 물러날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타의에 의해 물러나게 된 것이다. 그 사이에도 김재철 사장은 제멋대로 쫓아낸 기자, PD, 아나운서를 원직 복직시키라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외면했고, 측근들을 전국 MBC 계열사 임직원으로 임명했다. 방문진법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그의 도발에 방패막이를 자처했던 여당 추천 이사들마저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환영한다”고 하기엔 너무 늦게 이뤄진 결정이다. 해임안이 수차례 부결될 때도 그의 탈법, 무법, 불법 행각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초등학생들조차 ‘김재철’ 하면 ‘무용수’나 ‘법인카드’를 말하지 않았던가. 온갖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전 국민이 이름을 아는 거의 유일한 언론사 사장이 바로 그다.
그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은 사법당국의 몫이겠지만 이명박 정권이 끝나고 나서야 그를 해임한 것은 방문진의 중대한 직무유기이다.
방문진이 이제라도 정명(正名)을 찾으려면 제대로 된 후임 사장을 뽑아야 한다. ‘대통령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선임된 사장 한 명이 한국의 공영방송체제를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을 지는 김재철 사장이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방문진이 권력의 용안을 살피면서 이른바 ‘제2의 김재철’을 앉히려 한다면 이제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방문진은 정치권에 충성하는 ‘해바라기’ 사장이 아니라 공영방송 MBC를 정상화할 수 있는 사람을 사장으로 선출하는 것만이 그동안의 잘못을 사죄하는 길일 것이다. 그동안 방문진은 해임안을 세 차례나 부결시키면서 김 사장에게 면죄부를 줬었다. 김재철 사장과 사실상의 공범인 셈이다.
아울러 방문진은 MBC 관리 감독 기관으로서 김 사장에게 쫓겨난 수많은 방송인을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려보내야 한다. 얼마나 많은 MBC 방송인들이 해직과 부당전보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가. 이들이 빼앗긴 일터를 되찾는 것은 무너진 정의가 다시 서는 일이자 질식사 직전인 MBC의 경쟁력이 비로소 회복되는 과정이다.
김재철 체제 하의 적폐 청산 역시 방문진이 할 일이다. 방문진이 제대로 감시만 했어도 지금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 오죽하면 감사원이 김 사장과 함께 MBC 감사를 고발했겠는가.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는 단죄해야 할 것이다.
MBC의 신뢰도가 떨어진 만큼 방문진에 보내는 시민들의 시선도 싸늘하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방문진인지, 방문진 스스로 보여줄 때다. 방문진은 애초 민주화 이후 군사정권 하의 어용·관제방송 시대를 청산하고 진정한 공영방송을 세우기 위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탄생했다. 그 설립 정신으로 돌아가 존재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