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마당서 일내는 것' 못참는 중국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3.04.10 16: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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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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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 수사란 말도 있듯이 국제무대에선 직설적 표현보다 우회적인, 에둘러가는 표현이 많이 사용된다. 따라서 외교무대에서 직설적 표현이 나오면 ‘정도를 넘었다’, ‘뭔가 있다’고 보고 주목하기 마련이다.
최근 중국 측 발언에서 이런 직설적 표현이 자주 발견됐다. 지난 4월6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유엔의 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이 자리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의 문 앞에서 사단이 나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강경한 입장과 함께 조급함과 짜증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누구에 대한 강경함과 짜증일까?
하루 뒤 이번엔 시진핑 국가주석의 입에서 이보단 덜하지만 비슷한 맥락의 발언이 나왔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 남부 하이난섬에서 열린 보아오 아시아포럼 개막 연설에서 “어느 일방이 사익을 위해 지역이나 세계를 혼란에 빠트려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지구촌을 이익 쟁탈의 각축장이 아니라 공동 발전을 도모하는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에 이은 이 말에 세계 언론들은 ‘어느 일방’이 누구를 지칭하느냐에 큰 관심을 보였다.
우선 지목된 대상은 바로 북한이었다. 정전협정 폐기, 전시상태 돌입을 선포하고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등 도발행위를 극한적으로 끌어올리는 북한의 행위는 한반도의 안정 관리를 목표로 하는 중국으로선 인내심의 한계를 스스로 시험해야 하는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북한만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곧바로 제기됐다. 북한의 도발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강경 일변도의 강공을 펴는 미국과 한국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다.
약간의 부가 설명을 덧붙여보자. 천안함 사태 이후 한중 관계는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워가는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중국 학자들은 중국이 한국정부에 요구한 것이 두가지, 하나는 남북 관계를 원활히 해서 한반도 안정을 도모할 것, 또 하나는 미국을 ‘황해’에 끌어들이지 말 것 이었다는데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이 두가지가 모두 깨지면서 냉각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비춰 본다면 북한의 도발 억지를 위한 것이라지만 미국이 연일 핵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을 동원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가 중국으로선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미·일 군사동맹이 강화되며 중국을 겨냥한 MD가 구축되고 결국은 미국의 ‘아시아로의 복귀’ 전략이 ‘중국 포위 전략’이라고 믿고 있는 중국으로선 곧 터질 것 같은 한반도 정세도 정세지만 ‘순망치한’의 우려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는 해석이다.
결국 최근의 극한 대치는 지정학적 이익이 다시 전략적 이익으로 재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한·미·일 동맹이 강화될수록 중·러·북의 결합 강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신냉전의 서막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중·러 관계와 협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줬다. 시진핑과 푸틴은 ‘중·러 관계가 역사상 최고’라고 서로 화답하고 축하했다. 푸틴은 사상 처음으로 크렘린 궁 의장대를 보내 시진핑을 맞았고 러시아군의 심장부인 작전통제센터도 사상 처음으로 시진핑에게 개방했다.
중국의 대국화, 군사화에 대한 우려에 시진핑은 누차 “중국은 동맹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이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취임하자마자 닥쳐온 한반도, 동북아의 위기는 중국의 행보를 다시 ‘동맹의 길’로 이끌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최근 북한의 핵실험 이후 이를 제재하는 유엔 결의안에 찬성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중·미 관계도, 러·미 관계도 예전같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을 되뇌지만 “미국의 영향력 안에 있는 핵없는 북한보다는, 핵을 보유한 사회주의 북한을 더 원할 것”이란 설명은 중국 이외의, 압박 이외의 다른 방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압박 이외의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