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도 말썽인 'MB'
[글로벌 리포트 | 중동·아프리카] 윤창현 SBS 카이로 특파원
윤창현 SBS 카이로 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5.01 14: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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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창현 SBS 카이로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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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이집트의 영자신문들을 펼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MB’라는 영문 이니셜을 외신면도 아닌 1면 헤드라인에서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요즘 MB는 이집트 시민들 사이에서 증오와 불신의 대상이다. 다름아닌 집권 자유정의당의 배후조직, 권력의 실세인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s)을 지칭하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30년 무바라크 독재를 끝내고 투표로 집권한 민주선거의 적자이지만 그들이 지난 10개월여간 보여준 성적표는 처참하다. 끊임없는 정치적 갈등에 속수무책인 채로 이집트의 핵심인 관광산업은 결정타를 맞았고, 급기야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연일 물가가 미친 듯이 폭등하고 있다. 당연히 시민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곳곳에서 MB 사무실과 당사가 공격당하고 차라리 군부가 다시 나서라며 시위와 서명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그저 사실을 사실대로 전하는 언론의 존재조차 권력자들에겐 부담스럽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는 이집트 언론인들은 어딜가나 무슬림 형제단원의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고 있고, 실제로 곳곳에서 폭행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이집트 언론인협회가 언론자유를 보장하라며 긴급 회견을 열자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나서서 언론인에 대한 모든 고소·고발을 취소했지만 이것으로 이집트의 새 정부가 언론자유 보장에 적극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집트 언론인협회에 따르면 무르시 대통령 당선 이후 집권 세력인 무슬림 형제단과 이슬람주의자들은 곳곳의 국영방송과 위성채널, 종교 방송 등의 70% 이상을 장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30년 무바라크 독재 시절 권력과 결탁해 천문학적 연봉을 받아가며 권력의 비위를 맞춰왔던 기생형 언론인들 상당수가 시민혁명 과정에서 벌어진 언론 내부의 민주화 운동으로 축출됐지만 민주적 권력 교체가 진일보한 언론자유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바람은 이처럼 산산이 부서져 가고 있다.
이런 ‘MB’ 치하 이집트의 위축된 언론자유를 접하면서 지난 5년 언론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한국의 MB 치하가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그저 사실을 말하려던 언론인들은 마이크와 펜을 빼앗겼고,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언론을 장악하려 하겠느냐”는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들의 복직 소식은 함흥차사다. 그리고 여전히 사실을 말하려는 자들의 자리엔 새로운 권력 아래서 ‘입 안의 혀’가 되려는 자들이 득실거린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선정한 언론자유 지수를 보면 한국은 올해 6계단 추락한 50위에, 이집트는 8계단이 상승했지만 158위라는 처참한 지경에 놓여 있다. 표면적으로 보기엔 경제적 번영의 성과와 앞선 민주화의 이행으로 우리가 한참 앞선 것처럼 보이지만 158위나 50위나 아직도 민주주의 기본인 언론자유로 씨름하고 있기는 별반 차이가 없다. 특히 종교를 앞세운 이슬람 헌법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이집트의 집권세력이나 안보를 내세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한국의 새 정부의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한심한 인식엔 조금도 차이가 없다.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