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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일본이 기사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네요. 오늘 신문 1면 대부분이 아베 이야기던데요.”
4월 24일 칼럼을 작성할 차례를 환기시키는 기자협회보로부터의 메일 내용이다. 지난달 23일 참의원에서 침략에 대한 정의가 학계에서도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는 발언에 대한 한국 언론의 반응을 두고 한 말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마저도 부정하는 뉘앙스의 발언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난달 27일 일본 언론노조의 연합체인 일본 매스미디어 문화정보 노조 회의(MIC)가 ‘외국 특파원이 본 오늘의 일본’이라는 타이틀로 긴급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아베 수상의 최근의 발언을 바라보는 일본 언론의 무신경·무감각에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날은 황금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자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150여명에 달하는 청중들이 심포지엄 회장을 가득 메웠다. 신문노련, 민방노련 등 일본의 주요 언론사들이 소속되어 있는 노조가 굳이 외국 특파원들의 입을 빌려 일본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하는 것은 전 세계가 아베 총리의 일본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자국언론들에서 비판적인 논조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심포지엄에는 미국, 영국, 한국의 특파원이 참석해 일본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와 인디펜던트의 특파원을 겸하고 있는 영국기자는 자민당 내각 출범 관련 기사를 송고했을 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아베 내각의 정치성향을 분석한 기사를 보고 런던 편집부로부터 확인 전화가 왔다. 기사는 아베 내각의 각료 중 보수계 단체인 일본회의 회원이 13명(68%), 야스쿠니 의원연맹 소속이 15명(78%), 자학적 역사관을 수정해야 한다는 교과서 의원 연맹 소속이 9명 절반 정도,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헌법 개정 의원연맹 회원이 10명(52%)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편집부로부터 기사내용을 믿을 수 없어서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닐까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아베 내각을 보수정권이라기 보다는 급진적인 우익 정권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최근 사망한 영국의 대처 수상도 보수성향을 뛰어넘는 급진적인 일면을 보인 정치가 중 한 명이지만 그런 대처 수상도 영국의 아일랜드 침략에 대해서는 재임기간 중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기자는 역사인식, 헌법 개정에 대해서 아베 수상이 언제 본심을 드러낼 것인가를 주의깊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는 않겠다든지, 침략에 대한 정의가 학계나 국제적으로 확정적이지 않다는 발언도 주목할 만하지만 침략에 대한 위협에는 굴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아베 수상의 역사관을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이 발언이 가지는 의미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다음날 신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한국 특파원은 1만명 이상이 참석한 반전데모가 다음날 신문에 한 줄도 보도되지 않는 일본 언론의 보도 태도를 소개하면서 일본 언론들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과제들을 쟁점화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동일본 대지진 후에도 일본사회의 진로에 대해서 토론거리를 제시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 문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문제 등에 대해서도 정부측 입장에 동조하는 논조가 대부분이다. 사실보도에 충실하고 문제점은 지적하면서도 최종적으로 평가를 유보하는 논조는 시민을 위한 저널리즘이라기보다는 정부와 엘리트를 위한 저널리즘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들의 수동적인 자세는 저널리즘을 권력의 손에 맡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언론이 이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절독운동이라도 펼쳐야 한다는 참석자의 코멘트로 심포지엄은 막을 내렸다.

자신들의 문제를 외국인의 입을 통해 지적하려는 이날 심포지엄은 일본 언론이 저널리즘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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