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청소년 20만명 시대

[스페셜리스트 | 문화] 김소영 MBC 주말뉴스부장


   
 
  ▲ 김소영 MBC 주말뉴스부장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범죄 수준이 어른 뺨칠 정도라는 뉴스를 보았다. 마트에 들어와 금고를 통째로 들고 달아나거나, 휴대전화 매장에서 스마트폰을 20초 만에 싹쓸이하는 대담함은 그렇다고 치자.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 합의금을 뜯어내는 수법으로 3년 간 1억원을 챙겼다는 10대들, 또래 소녀에게 성매매를 시킨 뒤 상대 남성을 협박해 돈을 빼앗았다는 10대들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무슨 성인 범죄 집단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가정을 떠난 가출 청소년이다. 놀랍게도 국내엔 이런 가출 청소년이 20만명이나 된다.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고스란히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지난 98년 IMF 외환위기 사태 때 어려워진 경제 사정으로 가출 청소년이 늘었다고는 하나, 집 떠난 애들이 2만명도 아닌 20만명까지 이르게 된 것은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부모 탓이 가장 크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에 자살률만 1위인 것이 아니다. 이혼율과 이혼 증가율도 1, 2위를 다툰다. 국가 공동체의 기반이 되고 있는 가족이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대국으로 화려하게 발전했다며 좋아할 일이 아니다. 중환자가 명품 옷을 입고 웃고 있는 꼴이다.

오죽 견디기 괴로웠으면 집에서 뛰쳐나왔을까-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가출한 10대들에게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라고만 할 것도 아니다. 실제로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장소가 있기는 있다. 전국에 90개 정도의 청소년 쉼터가 존재한다. 그런데 청소년 쉼터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고작 1000명 정도. 그러니까 가출 청소년 20만명 가운데 1000명을 뺀 나머지 19만9000명은 여전히 길거리에 돌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장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이 정도면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가출 청소년들은 청소년 쉼터가 있다는 것도 잘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다른 성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도 큰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매일 보는 학교 선생님이 도와주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전국 1만1000여개 초·중·고등학교에 자격증을 가진 상담교사는 110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또 가출학생 상담은 이들 교사 업무의 일부에 불과하다. 공부를 하지 않겠다며 학교를 떠난 10대 청소년은 교육과학기술부가 담당하지만, 집을 나온 청소년은 여성가족부가 담당한다. 물론 두 개 부처의 업무 연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60년대 인력난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받아들인 독일은 가난과 멸시 속에 방치된 이들의 2세 문제에 무관심했다가, 이들이 자라나 가출하고 온갖 범죄를 저질러 사회적 비용을 비싸게 치른 후에야 청소년 복지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10대 미성년자가 저지르는 범죄가 1년에 12만 건에 이른다.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자. 내 자식만 잘 키운다고 행복해지는 그런 순진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돌봐야하는 사회적 자각이 뜨겁게 일어나야 한다.

어쩌면 늦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둘러야 한다. 미혼모나 고아들을 위한 복지 지원은 그래도 꾸준히 늘고 있고, 사회 각지에서 뜻있는 단체나 개인 복지가의 도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어린이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어정쩡한 중간자, 청소년들은 그야말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청소년 쉼터 같은 대안시설을 늘리고 예산을 더 많이 지원하는 법안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4년마다 지역구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들의 관심 순위에서 힘없는 가출 청소년은 저 멀리 내려가 있을 뿐. 10대 청소년들에게 투표권만 있어도 법은 진작 통과됐을 것이라는 쉼터 관계자의 한숨 섞인 푸념이 가족의 달 5월을 맞아 더욱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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