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MBC 사장이 되려면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5.08 16:26:16
국제 언론감시 단체인 ‘프리덤 하우스’가 조사하는 세계 언론자유 평가에서 한국이 나미비아와 함께 공동 64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내전이 이어지는 아프리카 말리보다 18계단이나 낮은 순위다. 그나마 작년보다 순위가 4계단 올랐다고 한다.
이 보도가 나온 지 몇 시간 뒤 한국의 대표적 공영방송 그룹 중 하나인 MBC의 신임 사장에 김종국 대전MBC 사장이 선임됐다. 김 사장은 해임된 김재철 전 사장의 잔여임기인 10개월간 사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사장 선임 며칠 전부터 ‘김종국으로 내정됐다’는 이른바 ‘청와대 개입설’이 파다했다. 실제 투표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여당 추천 이사들마저 몰표를 던져줬다. ‘청와대 개입설’은 더욱 확산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첫 공영방송 사장 선임이어서 큰 기대를 모았지만 가장 우려할만한 인물이 사장으로 뽑히자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김종국 신임 사장은 2년 전 마산·진주 MBC 통합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지역MBC 통폐합을 강행해 지역 기자들과 격렬히 충돌했다. 해고·정직 등 중징계를 내리고 고소·고발을 남발했다. 기자들을 내쫓고 대체기자들을 투입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이른바 ‘진주 학살’로까지 불리는 김종국 사장의 노조 탄압은 1년 뒤 서울 MBC에서 더욱 확대된 규모로 김재철 전 사장에 의해 반복됐다. ‘김재철 체제’의 청산이 MBC 정상화의 출발점이라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모아졌지만 ‘김재철 체제’의 기획자가 후임 사장으로 선임된 셈이다.
그러나 김종국 신임 사장은 “김재철 전 사장과는 공적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김재철 아바타’설을 부인했다고 한다. 자신이 김 전 사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듯 “사장은 도덕과 신망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공정방송에 직을 걸겠다”는 말도 남겼다. 그렇다면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김 사장이 스스로 밝혔듯 보도·시사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회복할 장치를 마련하고, 보복성 징계와 인사를 이제라도 철회해야 한다. ‘김재철 아바타’가 아니라면 김재철 전 사장이 쫓아낸 해고자들을 하루 속히 복직시켜야 한다. 이익만 좇는 소수의 정권 해바라기들이 아니라 양심적인 기자, PD 등 노조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면 MBC 정상화의 길이 보일 것이고 김종국 사장도 성공한 사장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1992년 MBC노조의 50일 총파업 때 투입된 공권력에 의해 강제 연행됐던 ‘노조 부위원장 김종국’의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김종국 체제’의 출범은 우리 언론계에도 많은 교훈을 던져준다.
재작년 진주MBC 기자들이 김종국에게 쫓겨나 거리를 떠돌 때 서울 MBC를 비롯한 모든 기자들이 ‘지역의 문제’라며 외면했다. 바로 1년 뒤 서울 MBC, KBS, 연합뉴스, 국민일보, 부산일보 등 많은 언론사가 비슷한 문제로 격렬히 싸워야 했고 올해도 또다시 전운이 감돈다.
YTN과 진주 MBC 사태 때 우리가 ‘특정 방송사의 일’, ‘지역의 일’이라며 외면하지 않았다면 작년의 큰 싸움은 하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연대와 참여가 파업과 시위보다 강하다. 언론 자유를 되찾는 길에 ‘지역’과 ‘매체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고작 64위 수준의 자유에 만족할 게 아니라면 ‘한국기자’의 큰 틀에서 함께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