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씨가 기자였다는 게 부끄럽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5.15 15:12:49
윤창중씨의 ‘미국 기행’(奇行)이 국제적 망신을 부르고 있다. 한국 외교사에 길이 남을 스캔들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궤변으로 도배질한 기자회견은 압권이었다. 그런 그가 기자 출신이라니 자괴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윤씨의 행태를 보면 이번 추문이 우발적인 실수가 아니라 근본적인 자질 부족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선 그의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과 구시대적 가치관은 한국 사회는 물론 기자 사회를 모독했다. 그의 해명 아닌 해명의 빈약함은 이후 여러 경로로 드러났지만 만약 그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해도 심각하다. 야심한 시각에 자기 딸보다도 어린 교포여성을 술자리에 불러다 ‘허리를 건드리는 것’을 ‘한·미의 문화적 차이’라고 내뱉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 더구나 성희롱은 피해자의 수치심이 큰 기준인데 그는 그만한 인식조차 없다는 걸 전 세계에 자랑했다.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청와대에 이런 수준의 1급 공무원이 들어앉아 있었다니 기가 막힌다.
피해자인 인턴직원을 ‘가이드’라고 강변하는 것도 그의 비뚤어진 가치관을 드러내준다. 윤씨의 눈에는 대통령의 첫 해외방문을 돕기 위해 선발된 직원이 자신에게 서비스해야 할 ‘가이드’였던 것이다. 설령 가이드라고 하더라도 공적인 업무 파트너인데 무슨 자격으로 아랫사람 부리듯 호통을 치고 허드렛일을 요구한단 말인가. 그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지 스스로 실토한 셈이다.
공직자로서, 직업인으로서 책임의식 또한 낙제점이다. 대통령의 해외 방문을 수행한 청와대 대변인이 만취할 정도로 음주를 할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갖는다는 것부터가 납득이 안된다. 그것도 대통령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말이다. 작은 기업체에서 해외출장을 가도 행동거지를 조심하기 마련이다. 몰상식한 관광객과 다를 게 없다.
그가 연 기자회견은 최소한 지켜야 할 정치적 도의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자기가 살기 위해 인턴직원은 무능한 사람으로, 홍보수석은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기 바빴다. 이는 결국 자신을 등용한 대통령을 향해 침을 뱉은 것과 다름없다. 대변인도 정권의 일종의 정치적 동반자다. 그렇다면 자신 선에서 파문을 수습해보려는 염치는 있어야 할 텐데 ‘물귀신 작전’으로 일관했다. 정치권이나 언론계에 다른 점에서는 비난받아도 ‘의리’는 있다고 평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는 여기에도 한참 미달인 것이다.
모든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정치권의 여야, 언론계의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윤씨의 청와대 대변인 발탁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렇게 의견이 일치되는 일도 흔치 않다. 그의 정치적 입장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그의 증오와 갈등을 증폭시키는 언어폭력은 품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인물이 한 나라 대통령과 국민의 가교 역할을 하는 대변인을 맡는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상식적인 지적이었다. 결국 그는 이번 추문을 통해 평소 ‘막말’로 쌓아온 바탕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수많은 폴리널리스트가 언론계를 부끄럽게 해왔다. 그중에서 윤씨는 최악의 사례라 할 만하다. 언론사와 청와대, 대선 캠프를 지하철 갈아타듯 넘나든 그의 이력은 폴리널리스트 중에서도 악성이었다. 한때 기자였던 그가 결국 이렇게 화룡점정을 찍었으니 기자들은 국민에게 더욱 면목이 없다. 이제 윤씨같은 폴리널리스트는 언론계에서 영원히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