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찰과 한국일보' 철저한 수사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6.05 15:19:47
검찰이 이명박 정부 시절 정치검찰로 전락했던 불명예를 씻으려 하고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비롯해 4대강, 전두환 추징금 등 대형 이슈에 정면 대응해 오랜만에 서초동 검찰청사에 핏기가 도는 요즘이다.
그런 검찰이 주목해야 할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지난달 24일, 기자들의 카메라를 피해 법원 복도 칸막이 속으로 들어가 벽만 쳐다보고 있는 한 남성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들 앞에서 때 아닌 묵언수행을 한 그는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다.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혐의를 받은 그는 이날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 받았다. 이 사건의 핵심인 그는 구속까지 된 자신의 처지에 여러차례 불만을 토로해 ‘시한폭탄’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입을 다문 진 전 과장의 모습은 이 사건에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웅변해준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정부가 집권세력과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세금을 유용해 국민의 인권을 짓밟은 추악한 권력형 범죄다. 더욱이 사찰 대상에 YTN, KBS 등 언론사까지 포함됐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근본인 언론자유를 짓밟는 파시즘적 행태가 남아있다는 충격을 던져줬다. 이에 YTN노조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검찰에 고소해 지난달 30일 첫 고소인 조사가 이뤄졌다.
이 사건의 죄질보다 더 큰 문제는 검찰 수사가 ‘윗선’을 전혀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결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영준 전 차관과 이영호 전 비서관이 이 범죄의 우두머리인 셈이다. 그러나 재수사까지 나섰던 검찰은 피의자들 스스로 청와대와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정황을 실토했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사를 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의 조사 결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사찰을 직접 하명하고 보고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인사 청문회에서 민간인사찰 사건에 대해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다시 수사하겠다”고 했다. 새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1년 전 불법사찰 재수사 때 차장검사로서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선언했던 결연한 의지가 초라한 수사 결과로 귀결된 것이 결코 진의가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되기를 바란다.
또 하나의 장면은 4일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이다. 안에서는 한국일보 사주인 장재구 회장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참석하고, 밖에서는 기자들은 회장을 구속수사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일보 노조는 장재구 회장이 회사에 200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며 검찰에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한국일보 회생의 희망이었던 중학동 건물 입주가 장 회장의 개인 돈 마련을 위한 우선매수청구권 포기로 물거품이 되고 회사 매각마저 무산되자 기자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노조는 추가 고발까지 계획하고 있다.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에 발맞춰 검찰도 기업의 부정비리에 대해 엄정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언론사주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우리 사회의 여론을 선도해온 한국일보에 희망이 될 수 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취임일성으로 “400년 전 백의종군을 끝내고 전장으로 돌아온 충무공의 비장한 심경”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정부가 언론사 사장 인사에 개입한 정황까지 드러난 민간인사찰 사건과 언론사주의 부도덕한 비리 혐의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한 명예회복으로 오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