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근친' 내각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버락 오바마 2기 미국 정부가 ‘근친’(近親) 정부 소리를 듣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1기 내각은 ‘팀스 오브 라이벌’(경쟁자들로 구성된 내각)로 불렸다. 그러나 2기 오바마 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인선인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유엔대사 자리까지 충성파, 측근들로 채워졌다. 공화당 출신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당선 뒤 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롯 경쟁자들을 내각에 앉힌 것처럼 오바마도 집권 1기 때는 경쟁자들을 내각에 끌어들였다. 민주당 경선 상대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등용한 일이 대표적이다. 그 때 오바마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사람들이 내가 적당히 일하도록 놔주지 않고 계속 압박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오바마는 충성파로 둘러싸인 안전지대에서 편안히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번에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 오른 수전 라이스는 익히 알려진 오바마의 충성파다. 가족끼리 왕래하는 사이이고, 그의 오빠는 오바마의 농구경기 친구이다. 라이스의 뒤를 이을 유엔대사 사만다 파워는 오바마의 상원의원 시절 보좌관 출신이다. 그의 남편 캐스 선스타인도 오바마 1기 때 백악관에서 고위직으로 일했을 만큼 서로 인연이 깊다. 지난 5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둘의 임명 발표 때 출타 중인 선스타인을 대신해 백악관 국가경제회의 의장 진 스펄링이 파워의 어린 아들을 돌보는 베이비시터가 됐다. 오바마는 그 아들이 달리기를 할 수 있도록 집무실 오벌 오피스 문을 열어 주었다. 오바마 정부에서 일하는 게 집안 일이 됐다거나, 오바마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백악관 가족이란 말을 듣는 이유이다. 이날 임명 발표 때 로즈가든의 맨 앞줄에 있던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비서실장이 뒷줄에 땀 흘리며 앉아 있는 톰 나이즈 전 국무부 부장관에게 시원한 물을 주문한 것도 이런 장면 중 하나이다.

오바마 1기 때 백악관 비서실장 잭 루는 재무장관에, 그 후임에는 의원시절부터 10년간 오바마를 보좌해온 맥도너가 임명됐다. 백악관 대테러ㆍ국토안보 보좌관 존 브레넌은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하버드대 로스쿨 시절 ‘하버드 로 리뷰’에서부터 오바마와 함께 일한 마이클 프러맨 백악관 국제경제 부보좌관은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임명됐다. 기존 백악관에 있던 가신 그룹인 댄 파이퍼, 제니퍼 팔미에리, 로브 네이버스와 시카고의 친구 발레리 재럿, 상원의원 시절 오바마 사단에 합류한 앨리사 매스트로모나코, 피터 라우스 등도 전보다 직급을 높여 백악관에서 계속 일한다. 존 케리 국무장관, 척 헤이글 국방장관, 존 바이든 부통령은 오바마가 상원의원 때 일한 외교위원회에서 코드를 맞추던 인물들이다. 마치 의자 바꿔 앉기 놀이하듯 자리를 돌아가며 감투를 쓰는 이들을 보면 백악관을 떠난 측근 데이비드 엑설로드, 로버트 기브스, 짐 메시나, 데이비드 플러프가 신선해 보인다.

오바마의 사람들로 불리는 그의 친구나 충성파들이 소수를 제외하고 승진하면서 오바마 주변의 고위직에는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못했다. 바꿔 말하면 오바마는 측근에게 충성심을 요구하고 그에 보상하는 스타일의 인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가 주변을 이런 사람들로 가득 채운 것은 자신이 정치적 소수라는 계산 때문으로 보인다. 의회에서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에 발목이 잡혀 국민 지지를 받는 자신의 정책마저 제대로 성취한 게 거의 없는 오바마로선 우군이 절실했을 법하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나 밀방크는 오바마가 외부 공격에 대비해 너무 타이트하게 측근들로 원진(圓陣)을 쳐 멀미가 날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오바마 2기 진용이 자신이 그렇게 자랑하던 경쟁자 내각이 더 이상 아니란 것이다. 그가 4년 전 말한 대로라면, 대통령이 적당히 일해도 ‘노’(NO)라고 말할 사람이 적어졌다는 뜻이다. 주변의 비판과 다른 의견을 겸허히 수용한다던 오바마가 막상 주변에 듣기 좋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소통하는 사이 언론은 싫은 소리를 더 높이고 있다. 최근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통신, 인터넷 사찰 폭로 정국에서 미국 언론은 오바마 정부와 이전 조지 W 부시 정부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오바마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있다. 이번 사태에 앞서 오바마 정부는 무인공격기로 미국 시민을 살해하고, AP통신 전화기록을 압수했으며, 한국계 스티븐슨 김 사건과 관련해 폭스뉴스 기자를 공모혐의로 수사했다. 측근들과 소통하는 사이 오바마는 부시와 함께 미국 역사에 전례 없는 시민권 침해의 집권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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