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 저널리즘의 위기

[글로벌 리포트 | 중동·아프리카] 윤창현 SBS 카이로 특파원


   
 
  ▲ 윤창현 SBS 카이로 특파원  
 
한 때 입법, 사법, 행정의 세 권부를 견제하는 제4부라는 참으로도 영광스런 별칭으로 불렸던 직업이 기자다. 입법, 사법, 행정과 경제계 등 사회 전반을 주무르는 이른바 ‘사(士)’들의 틈바구니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퍼즐을 맞추고 숨죽인 ‘을’들의 목소리를 캐내는 기자의 일은 늘 위험하고 귀찮고 피하고 싶은 현장 속에 있다. 그래서 ‘선비 사(士)’자가 붙은 고매한 분들을 대하면서도 그 직업엔 ‘놈 자(者)’가 붙어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현란한 변화의 물결 속에 거대한 역사의 전환점을 맞고 있는 아랍권에서 특파원으로 일한다는 건 이런 직업의 의미를 한 번쯤 되새김질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다. 인간성의 극단적 파괴를 목도하게 하는 전쟁의 현장, 그 속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약자들의 끔찍한 현실, 이런 현실을 놓고 끊임없이 ‘이익’을 저울질하는 국제사회의 냉혹함…. 현장을 먹고 사는 걸 업으로 여기는 놈(者)들에겐 그야말로 노다지 같은 곳이고,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기자들이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도 맺지 않을 수 있었던 시리아며, 예멘이며, 리비아 같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물론 이런 현실을 반영할 공간과 의지가 대단히 박약한 게 한국언론의 현 주소다. 하물며 특파원으로 발령받은 기자에게 그 불안정하고 어렵고 위험한 곳에 도대체 왜 가려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 동료 선후배 기자들이 여럿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꼭 이런 극단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아랍권은 언론 수용자들의 변화를 가장 현장감있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격렬한 사회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이곳에서 언론을 수용하는 시민들의 눈높이는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뿌리깊은 독재권력에 맞선 건 언론이 아니었다. 제4부라는 언론은 견제와 비판 대신 유착의 길을 걸었고, 대신 시민들은 스스로 언론이 돼 저항의 물결을 조직했다. 수천년 전 아랍 문자와 이슬람 교리가 여전히 사회전반을 지배할 정도로 보수적이지만, 세상을 수평으로 엮어가고 있는 네트워크의 힘은 조금 덜 나쁜 언론을 차선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민들이 스스로 현장을 누비고 전달하며 언론시장의 지형을 뿌리째 흔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의 상황만 봐도 반정부 시위의 물결이 거센 터키에서도 연일 친정부 시위와 에르도안 총리의 거친 독백을 여과없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CNN터키 등 주류 언론에 대한 강력한 반발과 함께 SNS를 기반으로 스스로를 조직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가히 혁명적이라 일컬을 만한 역사 변동을 겪고 있는 아랍권의 시민들이 주류 언론을 외면하고 끊임없이 대안을 모색하려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그들의 합리적 의심을 담아낼 수 있는 통로가 막혀버렸으며, 그 때문에 당연히 더 이상 그들이 ‘진실’에 근접해 있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첨예하게 이해가 엇갈리는 곳, 그래서 가장 많은 무기가 유통되고 가장 끔찍한 인간성의 바닥을 드러내는 전쟁이 일상화된 현장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곳에서 보니 이런 주류 언론의 위기는 한국이든 아랍이든 지역에 관계없이 그야말로 ‘쌩얼’로 다가온다.

많은 언론계 종사자들이 새로운 네트워크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앞다퉈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온갖 뉴미디어 공간에 가공된 정보들을 올리고 어떻게든 유저들과의 접촉을 늘리려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시민혁명의 과정에서 소셜네트워크의 힘을 뼈저리게 체험한 아랍권의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발버둥이 과연 헐떡거리고 있는 가쁜 숨결에 산소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주류 언론의 기자들이 시나브로 거대한 미디어산업의 부속이 돼서 수많은 정보를 온갖 네트워크에 쏟아 붓고 있지만, 정작 그 안엔 시민들이 원하던 가공되지 않은 날 것, ‘합리적 의심’과 ‘진실’이 얼마나 담겨 있는가? 소셜네트워크와 뉴미디어를 강조하지만 정작 그 곳에 뭘 담아야 할지, 대중들은 왜 이런 새로운 네트워크에서 스스로 언론이 되려 하는 지에 대한 성찰은 있는지 심각하게 되돌아 볼 일이다. 변하지 않아야 할 기자의 본령이 흔들리고 위기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면 아랍권이든 한국이든 지구촌을 망라한 언론의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