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페이스북과 일본의 우경화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6.26 15: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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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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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수상의 페이스북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아베 수상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2002년 고이즈미 수상의 방북과 납치문제를 담당했던 다나카 히도시 전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실명으로 비난한 글을 게재한 것이 발단이다. 야당 정치가도 아닌 전직 외교관을 상대로 “외교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수상의 인신 공격성 투고에 여당 내에서 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 의원(자민당 청년국장)은 “실명으로 반론, 비난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일일이 비난에 대응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 의원은 “수상은 어떤 결정을 해도 비난이 뒤따른다”며 이는 “정치가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고 결과를 내기 위해서 전념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차남이다.
다나카 전 외무성 국장은 마이니치신문이 기획한 ‘보수주의와 역사인식’이라는 시리즈 제1회 ‘우경화, 일본공격의 구실(제공)’(6월 12일자)이라는 내용의 인터뷰에 등장했다. 다나카 전 국장은 인터뷰에서 “국제회의에서 일본이 극단적으로 우경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며 “아베 수상의 침략의 정의, 고노담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수는 없다는 발언이나 아소 부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일본유신회의 종군위안부 발언 등으로 우경화되고 있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런 움직임들이 한국과 중국에게 일본을 공격하는 구실을 제공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강조했다.
수상은 같은 날 반박글을 통해 다나카 전 국장이 지적한 우경화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그가 11년 전 일시 귀국한 납치자 5명을 북으로 돌려보내자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부분에 대해서는 북한과의 교섭기록도 남기지 않는 등 외교관으로서 자격미달이었다고 비난했다. 게다가 다나카 전 국장이 협상과정에서 전달한 북한의 주장은 납치자의 증언을 통해서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공격했다.
민주당 호소노 간사장이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고 권력자로서 민간인에 대한 개인공격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아베 수상은 유럽 순방 일정에도 정상회담 시작전에 “호소노 민주당 간사장이 말도 안되는 비판을 했다”며 “전형적인 공격 패턴”이라고 페이스북에서 맞받아쳤다. 수상은 “국민의 생명과 주권에 관한 판단과 공무원으로서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번에는 호소노 간사장이 NHK에서 “자민당에는 전쟁을 일으키고 싶은 자들이 있다”는 발언을 문제 삼았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은 각각 18일자, 20일자 사설에서 수상의 발언을 문제 삼았지만, 아베 수상의 페이스북은 오히려 아사히신문의 사설을 비난한 산케이신문의 칼럼을 링크시켰다.
수상의 페이스북 투고에 대해서 23일 현재 2만4000명 이상이 지지(like)를 보냈고, 1024명이 ‘공유’했다. 1084명이 댓글을 달았다. 36만명(22일 현재)의 팔로워를 가진 아베 수상의 페이스북은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112만명(트위터)에 비하면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아베 수상의 페이스북이 앞선다. 한적한 시골 길에서 농부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는 커버사진을 하시모토씨는 따라할 수 없다.
호시노 민주당 간사장을 비난한 투고에는 1923건의 댓글이 달렸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페이스북 댓글 내용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다. 아베 수상 주변에는 우익적인 목소리 밖에 모이지 않는 것 같다.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게 되면 이런 경향이 더 거세질 건데 외국친구들 만나기가 겁난다.” 아베 수상의 페이스북의 투고를 놓고 일본인 동료 교수가 늘어놓은 푸념이다. 아베 수상의 적극적인 의지로 이번 참의원 선거는 일본에서도 인터넷이 처음으로 선거운동에 허용된다.
우경화를 지적한 인터뷰에 수상은 왜 페이스북에서 개인의 자질을 문제삼는 것일까. 그런 수상의 투고에 왜 반한반중 감정으로 가득찬 댓글이 넘쳐나는 것일까. 다나카 전 국장이 인터뷰에서 지적한대로 일본이 우경화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