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트 머독과 장재구
[글로벌 리포트 | 영국] 김기태 전 한겨레 기자·버밍엄대 사회정책학 박사과정
김기태 전 한겨레 기자 limpidkim@gmail.com | 입력
2013.07.03 15: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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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 전 한겨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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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남짓 영국의 언론계를 지켜보면서 두 가지에 놀랐다. 첫번째는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가공할 영향력이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뉴스코퍼레이션사는 영국 최대 일간지 ‘더선’과 이른바 정론지인 ‘더타임스’를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두 신문은 영국의 전국지 가운데서 구독부수 기준 1위와 8위다. 한국으로 치면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를 함께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다. 그는 영국 최고의 경제지인 ‘파이낸셜 타임즈’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역시 한국으로 치자면 ‘한국경제’까지 넘보는 참이다.
신문뿐만 아니다. 방송에도 손을 뻗었다. 영국 최대 위성방송인 BskyB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BskyB의 유료가입자만 1070만명이다. 여기에 더해 민영방송인 ITV의 지분도 17.9% 소유하고 있다. ITV는 한국으로 치면 SBS다.
이쯤 되면 머독이 영국에서 쌓아올린 제국의 위용이 짐작된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계와 거래를 하고, 그 대가로 다시 미디어 제국을 확장하는 데 능수능란했다.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지지정당도 바꿨다. 1990년대 중반까지 보수당의 충실한 지지자였던 그는 1997년 노동당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2010년 총선에서는 다시 보수당 지지로 돌아왔다. 그가 거느린 매체들은 그의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따랐다. ‘파우스트’와 손을 잡은 정당은 모두 집권에 성공했다. 물론 공짜는 없었다. 거래의 대가를 둘러싸고 항상 구설이 뒤따랐다. 2003년 ‘커뮤니케이션 법’ 제정으로 그의 숙원이었던 신문과 방송 겸영을 합법화한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 특혜의 배경에 토니 블레어 수상이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머독의 영향력에 한번 놀랐다면, 그의 극악스러움에 두 번째로 놀랐다. 그에게는 신문은 사회의 공기(公器)가 아니었다. 돈벌이 수단이었고, 사익을 위한 노리개였다. 그가 1969년 인수한 ‘더선’이 40년이 넘게 매일 3면에 여성의 선정적인 누드사진을 게재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귀여운’ 예일지도 모른다.
그가 소유한 ‘뉴스 오브 더 월드’가 정치인과 연예인, 그리고 심지어 범죄 피해자들의 통화 내용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편집장들이 줄줄이 구속된 뒤에도, 그는 청문회에 나와 “자신은 알지 못했던 일”이라며 비난을 피해갔다. 그리고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폐간시켰다. 그의 지극히 상업적인 언론관 덕분에 그가 소유한 매체들은 하나같이 황색언론으로 변해갔다.
그는 전쟁도 부추겼다.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영국인의 80%는 자국 군대의 참전에 반대했지만 그는 앞장서서 파병을 주장했다. 당시 ‘가디언’의 보도를 보면 머독은 참전을 결정한 블레어의 결정을 두고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치켜세웠다. 그가 전쟁의 대가로 노린 것은 값싼 원유였다. 뿐만 아니었다. 그는 노조 파괴에 앞장섰다. 지난 1986년 인쇄노조의 파업에 맞서 무려 6000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지는 이를 두고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노조파괴 공작”이었다고 평가했다.
머독은 세금 탈루 및 조세회피의 전과도 가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조세제도의 빈틈을 노리거나 국제 조세 피난처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머독의 회사는 경쟁사에 견줘 법인세를 5분의 1 수준만 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그는 미 의회를 상대로 “조세 회피처를 사용한 적이 있다. 부정하지 않겠다”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지난 6월 홈페이지에 올린 기사에서 그의 회사를 간단히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그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과장스러운 표현만도 아닌 듯 하다.
한마디로 웬만한 나쁜 짓은 다 하는 머독도 하지 않은 일이 있다. 외부 인력을 동원해서 기자들을 편집국 밖으로 밀어내고 이른바 ‘짝퉁’ 신문을 발행한 일이다. 제 얼굴에 먹칠하는 짓을 ‘한국일보’ 사주가 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