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선임기자 등 제도 많지만 정착 멀어…노장 기자 '일자리' 시급

2013년, 기자들에게 미래는 있는가 (2) 선임기자·대기자-노장에게 현장을



   
 
     
 
1990년대부터 대기자·전문기자제 등장
중견급 이상 기자 연륜과 전문성 활용
애초 취지 퇴색·차별성 희미…대책 시급


2016년부터 주요 언론사들이 정년 60세 시대를 맞이한다. 중견급 이상 기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이 더욱 필요해졌다. 언론계에는 대기자, 선임기자, 전문기자 등 노장들이 전문성과 연륜을 발휘할 여러 가지 제도가 오래 전 도입됐지만 아직까지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연차가 쌓일수록 데스크 등 관리자의 길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기자 조로 현상’의 타개는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기자, 전문기자, 선임기자, 에디터, 보도위원, 기획위원, 편집위원….’ 평기자와 데스크, 편집·보도국장으로 단순화됐던 기자 직제에 다양한 형태의 기자 제도가 도입된 지 20여년이 지났다.

대기자, 전문기자, 선임기자 등은 각각 구체적인 취지나 운영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미디어환경 변화에 따른 콘텐츠의 질적 향상 및 지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문성과 연륜을 가진 기자가 필요해진 시대의 요청에 따라 등장했다는 점이다. 점점 숫자가 늘어나는 중견급 이상 기자의 역량 활용, 인사 다양화 필요성의 대두에 따른 점도 있다.

제도적인 차원에서 대기자가 자리잡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김영희 중앙일보 전 편집국장이 임원을 거쳐 ‘국제전문 대기자’라는 직책으로 현장에 복귀하면서 대기자 제도는 주목을 받았다.

전문기자도 대기자와 비슷한 때 등장했다. 1992년 중앙일보와 조선일보가 전문기자 채용에 나선 게 신호탄이었다. 1994년 중앙일보가 17명의 박사 학위 소지자, 해당 분야에서 장기간 활동한 외부전문가를 전문기자로 공채하면서 언론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렇게 첫발을 내딛은 전문기자제도는 외부전문가 중심에서 내부의 중견 기자들을 양성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심층보도를 위한 방송사들의 전문기자 육성정책이 경쟁적으로 시행됐다. 대표적인 것이 KBS의 ‘경력관리프로그램(CDP)’이다. KBS는 다양한 부서를 순환 근무한 1~7년차 기자들의 적성과 역량을 평가한 뒤 전문기자로 선발, 8~15년차 때 특정 분야에서 전문기자로서 역량을 쌓도록 했다.
선임기자 제도는 2005년 한겨레가 부장급 기자들을 대상으로 ‘부장급 현장기자제’를 실시하면서 언론계에 선을 보였다. 한겨레에 이어 조선일보, 경향신문, MBC 등이 역량있는 중견기자들을 취재 일선에서 뛰도록 하면서 대부분 언론사로 확산됐다.

이 같은 제도가 등장하게 된 이면에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있다. 1987년 신문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종합일간지가 1년 사이 2배 이상이 급증했다. 일간지의 지면에도 증면 경쟁이 불붙었다. 1980년대 평균 18면 수준이던 것이 1994년에는 48면에 달했다. 신문사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존의 사건·사고 기사로는 차별화가 어려운 실정이 됐다. 당시 등장한 김영삼 문민정부가 ‘세계화’를 화두로 꺼내고 사회가 민주화, 개방화의 물결을 탄 것도 신문 콘텐츠 변화를 강제한 측면이 있었다는 평가다. 기존 출입처 중심의 보도·편집 조직으로는 이 같은 사회적 변화를 감당하는 데 한계가 뚜렷했다.

2000년 이후 전문기자제가 재정비되고 선임기자제가 도입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확산으로 올드미디어의 콘텐츠 혁신이 지상과제가 되면서 ‘데일리뉴스’만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이 같은 기자제도의 혁신은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 언론사의 대기자, 전문기자, 선임기자 제도는 위축되거나 애초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 신문 환경의 급변으로 신문사들이 신규 인력을 대규모로 채용한 1988년 입사자들의 현황을 보면 현재까지 재직 중인 기자들의 경우 선임기자, 전문기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일보는 중앙경제를 제외한 상·하반기 공채 입사자를 합산했다. 경향신문은 취재기자 중심인 상반기만 통계에 포함했다.  
 
현재 주요 언론사에 활동중인 대기자는 김영희 박보균 대기자(중앙일보), 곽병찬 대기자(한겨레) 장용동 대기자(헤럴드경제) 등 손에 꼽힌다. 1995년부터 가장 체계적으로 대기자 제도를 운영해왔던 중앙일보는 최근 2년 사이 4명의 대기자가 회사를 떠났다. 대기자제가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위치에 걸맞는 연륜과 깊이를 가진 기자가 흔치 않은 탓도 있지만, 언론사들이 경영난 속에 임원급에 해당하는 대기자들의 경제적 대우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기자도 위기를 맞고 있다. 체계적으로 전문기자를 키우겠다는 의욕을 보였던 KBS의 전문기자 양성제도는 폐지된 상태다. 다른 방송사들도 의학·과학 등 제한된 분야에서만 명맥을 잇고 있다.

신문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1994년 외부전문가를 기용하는 파격으로 전문기자 붐을 일으켰던 중앙일보는 당시 채용된 17명 중 남아 있는 사람은 강찬수 기자(환경전문) 정도라는 점이 전문기자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선임기자도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선임기자가 돼도 별 차별성이 없다는 목소리다. 한 신문사의 기자는 “선임기자라고 특별히 뒷받침을 해주는 게 없고 절차만 까다롭다”며 “희망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선임기자는 전문기자와 운영에서 사실상 별 차이가 없는데 굳이 구별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중견급 이상 기자들의 역량을 최대화하고 기자들의 장기적 전망을 도모하게 할 제도가 활성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언론사의 인사·승진제도 개선이 첫 번째 과제로 지목된다. 현재 대부분의 언론사가 평기자에서 국장에 이르는 단계적 승진제도를 갖추고 있다. 데스크가 되지 못하면 ‘능력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조직 풍토에서는 중견 이상의 기자가 설 땅은 제한적이다. 기자가 일정 연차가 되면 역량과 적성에 따라 관리자(데스크, 경영직군)냐, 현장에 남아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느냐 택일이 가능해야 하는데, 원천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관리자급과 전문기자로 길을 나눠 승진과 대우에서 박탈감을 주지 않는 인사승진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언론사의 개방적이지 못한 조직 문화도 문제다. 서열화된 선후배 관계에서 선택지는 좁다. 3년 전 대표적인 환경전문가였던 박수택 SBS 전문기자가 논설위원으로 옮긴 게 대표적 사례다. 박 위원은 당시 후배가 보도국장에 임명됐다는 ‘서열’ 문제를 이유로 인사 조치됐다.

출입처 중심의 취재조직 운영도 걸림돌이다. 중견급 기자가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으려고 해도 후배 기자들의 이른바 ‘나와바리(영역)’를 침범하게 된다. 현재 출입처를 순환하며 근무하는 방식에서는 중견 연차 이후 전문성을 쌓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중견급 이상 기자들에게 역할을 보장하는 일은 언론사 입장에서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문제다. 언론사 인력은 1987년 신문 등록제 전환, 서울 올림픽 특수, 신규 언론사의 급증 등을 시작으로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큰 규모로 늘어났다. 이 기간에 채용된 16~25년차의 기자들이 차장급에서 부국장급에 이르는 간부층을 형성하고 있다. 대부분 언론사가 ‘상후하박’의 기형적 인력 구조를 갖고 있는 이유다. 보직 수는 한정돼 있고 앞으로 대상자는 많다.

언론사가 눈앞의 경영난을 이유로 중견급 이상 기자들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투자에 인색해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신문사의 중견기자는 “앞으로 정년 연장이 시행되고 언론사 경영 환경에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 연령대의 기자들과 언론사들은 난처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이들에게 제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줘 회사의 경쟁력에 선순환 작용하게 하는 중장기적 방안이 고민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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