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건재한 이유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7.31 15:04:44
|
 |
|
|
|
▲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
|
“저는 이곳 상하이 임시정부에 와서 우리 대한민국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다시한번 깊이 깨달았습니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그 많은 독립투사들의 간난고투의 투쟁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가 있었겠습니까?”
“이곳이 바로 그 폭탄 투척 현장이라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릅니다. 윤봉길 의사, 당시 나이 24살의 꽃다운 청년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독립의 희망이 싹트지 않았겠습니까?”
“일제의 침략의 역사가 여기 이곳 상하이에도 이처럼 명백히 확인되는데 일본은 반성은커녕 아예 그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결코 이런 제국주의 일본의 역사적 범죄를 용납할 수 없고, 좌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자 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아버님의 과오에 대해 사죄드리고자 합니다. 제 아버님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제의 군인이었습니다. 만주에선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독립군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버님을 존경합니다. 대통령 박정희를 존경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여기에 오기까지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성과가 큰 역할을 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을 내세워 제국주의 침략 전쟁 시기, 이에 동조한 과오를 그냥 덮으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를 부인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일본제국주의의 군인으로,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다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그분이 걸어온 길이 공개돼 있는 만큼, 그분의 과와 공이 역사 앞에 모두 제시돼 있는 만큼 그분에 대한 판단을 후세 역사의 판단에 맡겨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저에게 부여한 한민족의 민족사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입니다.”
2013년 6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상하이를 방문해 이렇게 선언했다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 전환을 맞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의 국격 또한 상승했을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동북아 역사 전쟁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과거를 인식하고 미래를 설계할 줄 아는 위대한 세계적 지도자로 거듭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발길은 상하이를 뒤로 한 채 진시황의 본향 섬서성 시안으로 향했다.
박정희 대통령만큼 논쟁적인 인물도 대한민국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독재자에서 산업화의 초석을 닦은 지도자로 극과 극을 달린다. 그런데 최근 더욱 우려되는 점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박정희 대통령을 거의 신격화하는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그에 대한 비판이 마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비판으로 매도돼 터부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광장에 나와있던 박정희를 다시 동굴 속으로 들여보내 우상시하는 퇴행적인 행위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천안문 광장에 내걸려 있는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봤는지 궁금하다. 마오는 1976년 사망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죽음 이후 정치적 위기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10년 대란’ 문화혁명에 대한 비판으로 ‘신중국 건설의 아버지’라는 마오의 위상까지 크게 흔들렸다. 당내에선 그의 과오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넘쳐났다. 덩샤오핑을 비롯한 실권자들이 거의 대부분 문화혁명의 피해자로 ‘거의 죽다 살아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마오의 과오는 인정하돼 공도 부인하지 않는’ 역사적 결정을 통해 마오의 존재와 권위를 지켜주었다. 천안문의 초상화를 내리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덩샤오핑의 출중한 정치력의 소산물이었다. 만약 당시 마오의 과오가 씻을 수 없는 것이라며 그를 숙청했거나, 아니면 반대로 마오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며 그를 성역으로 남기는 결정을 했다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은 이후 당헌에 ‘개인숭배’를 철저히 금지하는 엄격한 규정을 마련했다. 이는 마오를 ‘처절하게’ 반면교사 삼은 것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집단지도체제의 제도적 틀이 바로 여기에서 마련된 셈이다.
중국 방문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을 소개하는 책자가 잇따라 출간돼 중국인들의 높은 관심사를 반영했다. “가장 힘들었을 때 중국 철학서를 보며 어려움을 극복해냈다”는 설명에 중국인들은 큰 자부심을 느낀 것 같다. 중국에 대해 어느 대통령보다 이해가 깊다는 박근혜 대통령. 마오쩌둥이 어떻게 절대권력자가 아닌 공과를 평가받은 지도자로 남았는지, 그런 지혜를 발휘한 중국 정치의 힘은 무엇인지 한번 연구해 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재임 기간에 꼭 상하이를 방문해 임시정부와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역사를 반추하며 일본에 경각심을 주고, 한민족에게 희망을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후대를 통한 민족과의 역사적 화해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