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자들이요?…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기자정신이죠"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 '기자'를 말하다

기자들은 스스로 기자의 펜과 마이크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자 ‘국민의 눈과 귀’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런 찬사는 갈수록 빛이 바래간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2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인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도는 2.81점(5점 척도 기준)으로 2010년의 3.22점에 비해 하락했다. 언론인의 도덕성과 사회기여도 역시 각각 2.87, 3.18점인 것으로 평가돼 2010년의 3.15, 3.42에 비해 떨어졌다.
본보는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세대, 직업, 성별 등에 따라 19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울 종로, 광화문 등 거리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기자들에 대한 인식을 묻는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가운데 3분의2에 가까운 시민들이 기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19명의 시민 중 12명이 기자를 부정적으로, 5명만이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나머지 2명은 ‘반반’이라고 답했다. 





   
 
  ▲ 회사원 이진복씨  
 
“검열 안 해도 스스로 알아서 걸러”

“아무리 패기 넘치는 기자라도 결국은 현실에 순응하게 되지 않나. 언론의 자유를 아무리 강조해도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이건 언론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일선 기자들 차원에서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원생 남유정씨·25·여)

“기사는 보수적인데 개인적으로 얘기하면 굉장히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기자들이 많더라. 각 언론사 성향에 따라 이를 숨기는 것 같다.” (유학생 안수진씨·24·여)

부정적 인식 가운데 가장 많은 답변은 일선 기자들이 초기엔 권력을 감시하려하지만 점차 권력에 순응하는 쪽으로 변해간다는 지적이었다.

시인 김낙영(60대·남)씨는 “돈, 술, 밥 등을 얻어먹으면서 권력과 결탁하는 것이 요즘 기자들”이라며 “부정부패와 비리를 추적해야 하는 사람들이 윗선과 한패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사정권시절의 언론 검열을 예로 들며 “요즘 기자들은 정부가 검열을 안 해도 알아서 걸러낸다”고 지적했다.

10대 청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구독하고 있다는 중학생 이태민(14·남)군은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해직기자 문제를 알고 있다”며 “기자들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것 같지만 권력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등학생 박범지(18·여)양도 “기자들은 쉽게 정부의 통제를 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미리 정해진 답변 주고 인터뷰하기도”
대다수의 시민들은 제도권 언론에 속한 기자들이 ‘진실’을 전달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회사원 이진복(52·남)씨는 “옛날 기자들과 달리 요즘 기자들은 샐러리맨에 가깝다”며 “요즘 기자들은 정론직필의 정신을 잊고 사주나 권력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쓴다”고 했다. 이씨는 “주류언론의 대체재로써 한계는 있겠지만 (비영리 독립언론인) ‘뉴스타파’를 후원하고 있다”며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디자이너 박희숙(30·여)씨는 지상파 방송사의 영향력에 대해 “어른들이 삼양라면, 맥심커피만 고집하듯 신문이나 방송도 보던 것만 보는 습관적 행태 때문”이라며 “주류 매체들이 정부지원까지 받고 있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 자영업 채성희씨  
 
“같은 사안에 대해 비슷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는데, 요즘 언론은 특정 정보만을 보여준다. 혹은 대중들 사이에서 이슈가 돼 검색어에 오르내린 사건조차 지면에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흔히 ‘야마’(주제의 일본 은어)를 잡아 쓰는 기사의 문제점도 노출됐다. 한때 언론학도를 꿈꿨던 주부 이란주(47·여)씨는 한 방송사가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중 시민들에게 정해진 인터뷰 답변을 그대로 읽어주길 요구하는 장면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기자는 양심과 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기자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인터넷 기사 ‘아니면 말고’ ‘마녀사냥’식”
연예인 가십 기사들의 범람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특히 PC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뉴스를 소비하는 10대~30대 시민들의 비판이 거셌다.

회사원 배남주(30·남)씨는 “온라인 기사를 읽다보면 형식조차 갖추지 않은, 거의 감상문 수준의 기사를 접하곤 한다”며 “기자들을 영향력 있는 전문인으로 생각하는데, 온라인 기사들을 보면 기자들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회사원 송승혜(25·여)씨는 인터넷 사이트 ‘충격 고로케’(hot.coroke.net)를 언급했다. ‘충격’, ‘경악’, ‘알고보니’ 등 자극적인 온라인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사를 실시간으로 집계해 보여주는 사이트다. 송씨는 “충격 고로케를 보고 정말 통쾌했다”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기사의 선정성에 염증을 느낀다는 뜻”이라고 했다.



   
 
  ▲ 시인 김낙영씨  
 
취업준비생 박선영(25·여)씨는 “온라인 기사의 속보 경쟁, 조회 수 경쟁이 지나치다”며 혀를 내둘렀다. 박씨는 “특정 사건만 터지면 제목만 다른 똑같은 기사들이 수십 개가 올라온다. 그렇게 언론이 앞장서 마녀사냥을 주도해놓고 보도가 허위로 밝혀지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대응하더라”고 했다.

“윤창중 사건으로 기자 인식 나빠져”
인터넷을 통해 연예 기사를 챙겨본다는 대학생 김현아(23·여)씨는 “기자하면 ‘사생활 침해’가 떠오른다”고 했다. 일부 인터넷 언론의 ‘파파라치식 보도’가 원인이었다. 김씨는 “무슨 일만 터지면 집까지 쫓아가서 사람을 괴롭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고 했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김씨의 남자친구 박기용(25)씨는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을 언급했다. 박씨는 극중 연예인인 남녀 주인공이 기자들의 무분별한 보도로 큰 타격을 입는 장면을 떠올리며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기자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미지 악화의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부정적인 인식에는 기자와 취재원 간 술자리가 잦다는 이미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안수진씨는 “기자들은 술을 좋아하고, 윤리적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왜곡된 이미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얼마나 저런 생활이 익숙하면 방미 기간 중 성추행을 저질렀을까’하는 생각이 들자 기자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굳어졌다.”



   
 
  ▲ 대학원생 남유정씨  
 
“팔방미인 기자, 책임감 가졌으면”

시민들은 기자들을 향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모든 시민들은 기자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시민들은 언론이 지닌 영향력만큼 사회적 책임감도 동시에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태민군은 “기자는 모험심이 강하고, 체력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팔방미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에 맞게 항상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임지훈(48·남)씨는 “기자들이 실제 시민, 국민의 생각을 최대한 많이 들어야 한다”고 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채성희(51·여)씨는 기자들의 사회적 통찰력을 높이 평가하며 “서민 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을 위해 계속 힘써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낙영씨는 “높아진 시민의식에 걸맞게 기자들도 늘 공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며 “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와 공정성, 그리고 기자정신”이라고 덧붙였다.



과도한 정파주의·비정상적 언론관행이 불신 키워
“체계적인 언론윤리 교육 필요” 지적도


시민들이 ‘기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학자들은 언론의 과도한 정파주의와 비정상적인 언론 관행, 상업주의 등을 꼽았다.

정치적 편향성은 기자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키우는 주요한 원인으로 꼽혔다. 언론사가 정치적 이념을 갖는 것을 넘어 특정 정파를 옹호하는 듯 보도하는 것이 일반 시민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일부 기자와 언론이 ‘진실’을 전달하려 노력해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계로 지적됐다.

비정상적인 언론계의 관행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언론은 뉴스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공적으로 봉사하는 책무를 지니지만,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언론은 국민보다 우위에 있다’는 관료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취재원에 대한 고압적 자세, 지나친 광고 요구 등의 악습을 만들었다. 이러한 언론의 병폐가 쌓여 부정적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주로 젊은층이 지적하는 선정적 온라인 기사의 문제점은 상업주의에서 비롯됐는 분석이다. 언론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게 되면서 적은 비용으로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 흥미 위주의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다. 일부 언론사는 저임금으로 기자를 고용해 질 낮은 콘텐츠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매체 이용자들은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언론은 언론다워야 언론’이라는 말을 일선 기자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며 “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심층적인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뉴스 소비자에게도 “언론 환경의 근본적 구조를 바꾸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한 개별적인 힘이 필요하다. 국민 개개인이 매체의 옥석을 골라 소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당부했다.

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한국 사회는 언론자유와 언론윤리에 대한 교육이 거의 전무하다”며 “언론사 차원에서는 기자에게, 국가적 차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언론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가르치는 근본적인 가치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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