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왜 공화당 전략가를 만났나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8.14 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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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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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의 호칭은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다. 건국 초기 ‘전하’ ‘각하’가 거론됐지만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은 국민과 스스럼없이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통 사람 칭호를 택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백악관까지 거반 개방하며 소통 행보를 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 대통령이 머무는 방 132개짜리 백악관의 별칭은 ‘버블’(bubble)이다. 바깥과 소통이 안 되는 투명한 고립을 말하는 이 버블에서 벗어나는 일은 미국 대통령들의 오랜 숙제였다. 해리 트루먼은 백악관을 ‘거대한 하얀 감옥’이라고 불렀고, 빌 클린턴은 ‘연방 교도소 가운데 최고’라고 했다. 버락 오바마는 1기 집권의 최대 실수는 백악관에 스스로를 유폐시켜 워싱턴 밖 국민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인의 장막 속 대통령은 안 좋은 소식이나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는 충언을 듣기 힘들다. 정말 백악관에서 일하다 보면 대통령이 신처럼 여겨져 무슨 지시든 따르게 된다는 게 경험자들 얘기다.
소통에 능한 백악관 주인이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것은 공통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구르는 백악관’이라 이름 붙인 기차를 타고 전국을 돌며 국민과 대화했다. 허버트 후버는 500개 언론 사설 내용을 통해 여론을 파악했고, 바버라 부시 여사는 남편 조지 H 부시가 되도록이면 백악관 밖 지인들과 어울리도록 해 폭 넓은 시각을 갖도록 배려했다.
오바마는 백악관의 보호막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장 다양한 시도를 한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오바마는 소통 방편으로 현장 탐방 성격의 버스투어와 아웃리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대화를 즐긴다. 재선을 앞두고 진행한 중부와 서부의 버스투어로 오바마는 유권자가 원하는 선거공약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올해 10월 1일 본격 시행을 앞둔 건강보험개혁법이나 일자리 창출 정책 홍보를 위해 오바마는 요즘도 수시로 현장을 찾아가 국민과 대화한다. 오바마는 일과 뒤 비서진에게서 10통의 편지가 담긴 퍼플 폴더를 받는다. 오바마는 매일 2만 통의 편지 가운데 추려진 이 편지에 답장을 쓰고 또 편지를 보좌진에게 돌려 읽힌다. 글씨를 틀리지 않게 쓰도록 도와달라는 초등학교 1년생에서, 일자리를 원하는 실업자 어머니의 사연까지 다양한 편지를 매일 읽은 오바마는 재선 첫 기자회견에서 국민과의 이런 소통 덕분에 선거에 쉽게 이겼다고 했다. 반대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진지하게 소통하지 않고 보수언론이 만든 가짜 현실만 믿은 것이 패인이었다.
오바마가 선거 승리 뒤 전리품 나눠주듯 주변 자리를 자신의 사람들로 채우면서도, 백악관 담을 넘어 소통하는 일은 여야,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이달 9일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들의 기밀감시 프로그램 개선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앞서, 두 차례 정보기술(IT) 분야 주요 기업 최고경영진과 시민단체 인사, 로비스트들을 비공개로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 올해 1월의 2기 취임식 직전에는 저명한 역사학자 7명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저녁을 내며 2기 과제를 놓고 대화했다. 2009년 시작된 역사학자와의 연례 대화를 통해 오바마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이 역사적 위험 지대임을 알고 미군 철수의 결단을 내렸다.
측근 그룹인 이너 서클 밖의 목소리를 통해 정책 결정을 하려는 오바마의 행보가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집권 1기 초기에는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자 백악관이 그의 시카고 측근 사단이 장악한 버블 속의 버블이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2기 출범 직후 그에 대한 첫 비난 역시 주변에 ‘예스 맨’ 외에 다양한 인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오바마는 유독 의회, 언론 등 기존의 워싱턴을 움직이는 사람들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 백악관의 버블에서 도망치기를 희망하면서도 “변화는 워싱턴 안이 아닌 밖에서 가능하다”는 게 오바마의 고집이자 신념이었다.
한번은 조지 W 부시의 사람인 공화당 전략가 매튜 다우드가 오바마의 초대를 받았다. 다우드는 얼마 전까지 백악관에서 부시의 책사 칼 로브가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보를 통제하려 한 것을 목도한 뒤였다. 오바마 역시 주변에 측근들을 모아놓고 있다고 판단한 다우드는 오바마에게 목표에 필요한 수단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며, 정치권과의 소통 문제를 언급했다.
집권 5년째인 오바마는 늦긴 했지만 정치적 반대자들과 관계 복원을 시도하며 워싱턴 밖과 안 모두에서 변화를 찾으려는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7년간 백악관을 출입하며 5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케네스 월시 기자는 대통령이 ‘영광의 고립’에서 탈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소통을 위한 다양한 노력과 동시에 권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생각 속에서 편견과 전능함을 배제시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