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편가르기, '중립지대'에서 해답 찾았다"

MBC '100분 토론' 새 진행자 정관용 씨



   
 
   
 
관록의 토론 진행자, 5년만에 지상파 복귀
찬반 나뉘어 싸우는 토론프로 “이제 그만”
“건강한 중립이 갈등의 대한민국 치유한다”


그도 일종의 ‘해직자’였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KBS 사장이 바뀌면서 불어 닥친 ‘진행자 물갈이’ 바람은 그를 피해가지 않았다. 5년 넘게 터줏대감처럼 지켜온 KBS ‘열린 토론’과 ‘심야토론’에서 물러나는 건 한 순간이었다. 한때 ‘주7일’ 방송을 하던 그가 공백을 딛고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로 돌아오기까지 1년 반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3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백발이 무성해진 그가 MBC ‘100분 토론’ 진행자로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대선후보 토론 등을 진행하긴 했지만 지상파 TV 토론프로그램 진행으로 복귀한 건 5년여 만이다. 하지만 2004년 ‘심야토론’ 첫 진행을 맡았던 정관용과 2013년의 정관용은 달랐다. 아니, 달라야 했다.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토론 프로 진행을 가장 많이 한 사람으로서 “변화와 새로운 시도에 대한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TV 토론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진 게 1987년이에요. 이후 26년이 지났는데 적어도 지상파 토론 프로그램의 형식은 똑같죠. 찬반으로 갈라서 양쪽에 두세 명씩 앉혀놓고 열심히 토론하고 싸우다 끝나는 식입니다. 왜 다른 형식은 없는가 의문이 드는 거죠.”

답은 그도 알고 있었다. “방송사에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찬반 양쪽을 다 불렀으니, 방송사로선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미국의 ‘래리킹 라이브’처럼 한 사람을 앉혀놓고 진행자가 집중적인 공세를 퍼붓는다면? “우리 정치 언론 환경에서는 바로 그 방송사를 적대시 하는 구조가 될 겁니다.”

물론 기존의 찬반 토론 형식이 단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순기능도 분명히 있다”고 전제했다. 가장 큰 기능은 하나의 쟁점에 대해 집약적으로 가장 많은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이 자기 판단을 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토론을 거듭해가면서 찬반, 정반합 식의 민주적인 작동에 기여하는 기능도 갖는다.

하지만 모든 쟁점에 대해 찬반만 있을까. 지나치게 편 가르기, 진영논리로 극단화된 우리의 정치·언론 상황은 국민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 국민들 중에는 전적인 새누리당 지지자나 전적인 민주당 지지자가 많지 않습니다. 국민 다수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요. 그런데도 마치 두 목소리만 있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언론을 통해 과잉 노출되고 다수 국민의 소리는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가 지난 20일 ‘100분 토론’ 첫 진행에 나서면서 ‘대립을 넘어 대안을 모색한다’는 콘셉트를 내세운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100분 토론’ 홍보 스팟 영상에도 출연해 “건강한 중립의 목소리가 갈등의 대한민국을 치유합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찾은 묘안은 바로 ‘중립지대 시민패널’이었다. 전반부가 출연한 패널간의 찬반 쟁점 토론이 주라면, 후반부는 “친새누리당도, 친민주당도 아닌 중립적인” 시민패널과의 토론으로 진행되는 식이다. 시민 패널 토론에 할애된 시간만 무려 30분으로 가히 ‘파격적’이다.

그는 시민패널들에게 다소 까다로운 주문을 내놨다. 어느 한쪽 진영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거들거나 비판하기보다 양쪽 주장의 절충점을 찾고 “창조적 대안”을 제시해달라는 것이다. “어떡하면 싸울까, 공격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는 정치권에 대해 건강한 중립지대 시민의 목소리로 비판도 하고 견제도 하고 제안도 하는 겁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등에 업고 내가 그 안에 내용적으로 개입해 가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시민패널들은 찬반 진영의 논리에 대해 평가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정 씨는 시민패널과의 토론을 이끌어가면서 이들의 발언을 정리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한다. 그는 “전반부에서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을 말리겠다는 건 아니다”라며 “대안적 화두를 던지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첫 방송 후 홈페이지나 트위터에선 “이게 뭐냐, 옛날로 돌아가라”는 반응부터 “신선하고 획기적”이라는 반응까지 다양하게 쏟아졌다. “사람들의 평가나 반응이 가장 궁금하다”면서도 스스로는 평가를 보류한다는 정 씨는 시민패널에 대해서만큼은 “조금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며 약간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만큼 시민패널의 활약에 거는 기대가 크다. “건강한 중립지대 시민의 목소리”야말로 ‘100분 토론’이 추구하는 변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정 씨는 “다루는 주제의 성격에 따라 패널 구성이나 시민패널의 참여 방식 등이 역동성을 가질 것”이라며 “다만 변하지 않는 건 과거 방청객 구색 맞추기 식이 아니라 나와 시민패널간의 열린 토론이 엄청난 비중으로 들어갈 것이란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시도가 “시사프로그램 전체에서 변화의 시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1997년 SBS 라디오 ‘뉴스대행진’을 통해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데뷔한 정 씨는 거의 15년 동안 매일 하루 두 시간씩 생방송 진행을 해왔다. 현재 한림대국제대학원대학교 전임교수로 있으면서 주말도 없이 일하는 그에게는 1년 365일이 ‘온에어’ 중인 셈이다. 누구보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오래 해온 그이지만, 더 오래도록 마이크를 쥐고 싶은 바람이다.

“언젠가 방송을 통한 시사평론 활동을 30년만 하겠다고 작심한 적이 있어요. 아직 반밖에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국민들이 나를 평가할 때 잘못하지 않아야만 할 수 있는 거죠. 저 스스로를 경계하면서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학교에선 토론과 협상과 관련해 좋은 후학들을 키워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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