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과 일본언론의 역사청산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8.28 15: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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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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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한국, 중국)으로부터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서)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일본국 헌법은 전승국(미국)으로부터 강요된 헌법이기 때문에 개정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주변국에) 사과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식민지 침략과 전쟁에서 일본만이 잘못한 것인가.” 데라지마 지쓰로 일본 종합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18일 일본 TBS의 아침방송에 출연해 자민당이 재집권한 이후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를 이렇게 지적했다. 외부적인 시점에서의 지적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역사에 대해서 일본사회의 본심을 잘 지적한 말이다. 이런 지적을 보면 역사를 바라보는 일본사회의 인식이 내향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해 가족을 읽은 한 소년의 비참함을 소재로 전쟁과 원폭의 참상을 다룬 만화 ‘맨발의 겐’을 초·중학교에서 열람을 금지시킨 것은 이런 역사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 만화는 원작가 나카자와 게이지의 체험담을 토대로 만들어 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련의 조치가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며 2012년 8월에 제기된 주민의 진정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시의회는 진정내용이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교육위원회는 일본군이 중국인을 참수하는 등의 잔인한 폭력장면이 많다는 이유로 교사의 동석하에 열람하도록 요청해 사실상 열람금지 조치를 취했다.
8월은 이런 의미에서 일본인들에게 과거를 성찰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주요 언론들의 15일자 사설을 보더라도 ‘역사’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전후 68년 근린외교, 내향적 사고를 벋어나자”(아사히신문), “역사 응시해서 평화를 만들어가자”(마이니치신문)에서 “한·중의 반일(反日) 경도를 우려한다. 역사인식문제를 정치와 연결하지 마라”(요미우리), “헌법 개정으로 야스쿠니 문제를 종결하자! 참배 반대론은 근거를 잃었다”(산케이신문)에 이르기 까지 역사를 중요시 생각하는 것은 진보, 보수의 차이가 없는 듯 하다.
언론도 내향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 헌법개정의 장애물이 한국과 중국의 부당한 간섭 때문이라는 산케이신문의 주장은 산케이가 거부하고자 하는 자학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한 자기 모순적인 것이다. 산케이는 15일자 사설에서 이례적으로 아사히신문을 인용했다. 참의원 선거 직후 당선자를 포함, 전 참의원 의원을 대상으로 야스쿠니 참배와 헌법개정 시비를 물은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를 인용하면서 공식참배, 헌법개정의 길이 열렸다며 남은 것은 한국과 중국의 부당한 간섭뿐이라고 주장했다. 아사히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서는 48%가 찬성, 헌법개정에 대해서는 75%가 찬성했다. 이런 인용은 과학적인 조사도 신문의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산케이의 조사도 신문사의 입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국제사회에 일본이 우경화 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 데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현실에 대해서 자기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보다는 객관성, 중립성을 유지하는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하려는 일본 언론의 태도는 전쟁을 상업적으로 이용해서 국민을 선동했던 과거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 언론 스스로 자신에 대한 역사성찰을 게을리 한 귀결이지 않을까. 8월 15일은 일왕이 항복선언을 한 날이지만, 중국대륙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전투가 멈춘 것은 아니다. 한국, 중국의 일본 비판을 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과거에 대한 청산은 일본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일본 사회의 과거 청산을 거론하기 이전에 언론 스스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언론이 식민지 정책을 어떻게 선동했고, 전쟁을 어떻게 선동하고 협조했는지를 반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일에 누가 앞장섰는지에 대해서도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야말로 일본이 또 다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본심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지 68년이 지났건만, 일본 국민이 존경해 마지않는 일왕이 참배하지 않건만 야스쿠니가 참배자들로 붐비는 것은 일본 언론계의 내부의 역사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원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