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석기시대’를 맞은 느낌이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뉴스의 중심에 선 요즘이다. 그를 둘러싼 혐의와 발언이 한마디 나올 때마다 수십 건의 기사들이 뒤따라 나온다. 그야말로 2013년 대한민국은 ‘석기시대’가 된 듯하다.
이는 사회적 충격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석기 의원이 강연했다는 이른바 5월 모임 안팎의 내용은 더욱 시대착오적이고 황당하기 그지없다. 북한체제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광기적 역사인식에, 장난감 총을 개조하자는 등 기가 차는 발언이 뒤섞여있다. 통진당 측은 악의적 짜깁기라고 항변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의 당원이 활동 가능한 공당의 현실 자체가 문제다. 그들은 ‘석기시대’로 퇴행한 ‘사상적 지진아’라고 비난을 받아도 모자라다.
형법에도 몇 줄 안 나와 있는 내란음모죄가 30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도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들의 언동이 현대사회의 상식과 공존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를 법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법조계에서조차 내란음모죄 적용은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적대적 공범관계를 이루는 양극단의 수구세력이 우리 사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의 모임에서 과대망상 수준의 주장이 흘러나오고, 이를 수십년전 전가의 보도로 단죄하려는 국가정보기관의 대응은 정말 ‘석기시대’의 풍경이다.
정치권은 이해득실을 따지는 주판알 퉁기기에 여념이 없고, 공론장은 험악한 언어들로 채워진다. 이같은 혼란 상황에서 중심을 잃지않는 것 역시 언론의 책무다.
이 정도 의식 수준을 가진 구성원들이 운영하는 당이 과연 공당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언론들의 철저한 비판과 검증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선정적인 제목 장사로 흐르는 자극적인 보도는 금물이다. 사실보다 신념이 앞서 스스로 재판관이 된 듯한 조급증에 사로잡힌다면 자신을 수구적 일 극단에 가담시키는 우를 범하게 된다.
언론이 이같은 오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이번 사건과 국정원의 개혁은 별개 문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벌써부터 국정원 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비관론은 언론의 이중잣대에도 근거를 두고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는 신중을 기하던 일부 언론들이 이석기 사건을 맞아서는 확인 안 된 루머조차 ‘단독’ 이름을 내걸고 적극 보도하고 있다. 여론은 이같은 흐름을 벌써 읽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는 이석기 의원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국정원 개혁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내일신문과 디오피니언이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이석기 의원의 반론에 68.8%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반면 국정원의 국내파트 개혁은 56.7%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국정원의 내란죄 수사도 49.2%가 본연의 임무라고 보면서도 41.1%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대답하는 등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기를 꺼리고 있다.
국민들은 오히려 차분하고 성숙된 의식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수준에 부응해야 언론이 신뢰받을 수 있다. 더구나 10월 재보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언론이 앞장서 공안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제공할 때 언론 또한 ‘석기시대’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