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선택은 '피노체트 넘어서기'
[언론다시보기]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9.25 14: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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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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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의 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지만 이제는 과거의 상처를 극복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남겨줄 가장 훌륭한 유산은 서로 화해하는 평화로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지난 9월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주도의 쿠데타 발생 40주년을 맞아 국민 화합을 촉구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에 공감하는 칠레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용서와 화해에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피노체트 쿠데타와 군사정권에 대한 인식은 크게 악화했다. 76%가 피노체트는 독재자라고 답했고, 75%는 군사정권의 잔재가 사회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쿠데타의 부당성을 지적한 답변은 68%였다.
칠레는 중남미 지역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강한 민주주의 전통을 갖고 있다. 1930년대부터 대토지 소유주와 기업인, 온건중도 계층, 진보적 노동자 계급이 생산적인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민주주의 질서를 구축해 왔다. 이는 1970년에 세계 최초로 자유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사회주의 정권이 등장하는 토양이 됐다.
피노체트의 쿠데타는 칠레 역사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었으며 칠레 국민에게는 크나큰 불행이었다. 1973년 9월11일 피노체트는 군부 내 추종세력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켰다. 수도 산티아고를 장악한 쿠데타 군은 대통령궁을 포위했다. 살바도르 아옌데 당시 대통령은 마지막 라디오 연설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남미의 ‘좌파 도미노’를 우려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쿠데타를 지원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피노체트의 철권통치는 1990년까지 17년간 계속됐다. 군사정권은 과감한 시장경제 도입으로 일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잔혹한 인권탄압은 세계적인 비난거리가 됐다. 군사정권은 좌파 성향의 정치인과 노동운동가, 예술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피노체트 치하에서 불법체포·감금·고문 피해자는 3만8000여명, 사망·실종자는 32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피노체트 독재는 국민의 힘으로 종말을 고했다. 피노체트는 1988년 10월 집권 연장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패배하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1989년 12월 대선에서 파트리시오 아일윈 후보의 당선으로 피노체트 정권은 막을 내렸다. 1990년 민주주의 회복 이후 피노체트를 법정에 세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됐으나 그가 2006년 12월10일 91세를 일기로 사망하는 바람에 실제로 처벌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피노체트의 쿠데타와 군사독재는 칠레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해마다 9월11일에 인권탄압 진상규명과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며 벌어지는 시위는 칠레 국민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보수우파와 중도좌파로 갈린 정치권은 쿠데타 원인과 당시의 정치상황을 대립적으로 해석하며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보수우파는 “군사정권의 인권탄압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옌데 정권의 등장으로 칠레 민주주의가 단절됐고 이것이 쿠데타를 부른 원인이 됐다”고 주장한다. 중도좌파는 “쿠데타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당시는 쿠데타가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기였다”고 반박한다.
칠레에서는 쿠데타 발생 40주년을 전후해 사죄와 사과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법부의 뼈아픈 반성이 눈에 띈다. 대법원과 고등법원, 민사법원, 가정법원 판사들이 소속된 전국판사협회는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과 사회에 사죄할 때가 왔다”며 법원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별도의 성명에서 피노체트 정권 당시 인권탄압 피해자들의 보호 요청을 외면한 사실에 대해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피노체트에 대한 평가는 11월 대선에서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대선은 중도좌파 미첼 바첼레트와 보수우파 에벨린 마테이의 양자대결 구도로 좁혀졌다. 두 사람 모두 피노체트 군사정권과 인연이 깊다. 쿠데타 당시 공군 장성이던 바첼레트의 부친 알베르토 바첼레트는 아옌데 편에 섰다가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옥사했다. 역시 공군 장성이던 마테이의 부친 페르난도 마테이는 쿠데타를 지지했고 피노체트 정권에서 장관을 지냈다.
11월 대선에서 칠레 국민은 어떤 선택을 할까. 여론조사에서는 바첼레트가 압도적 우세다. 2006년 3월부터 2010년 3월까지 한 차례 대통령을 지낸 바첼레트가 승리하면 4년 만에 중도좌파 정권이 재등장하게 된다.
칠레 국민이 바라는 것은 바첼레트의 승리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다. 칠레 국민은 ‘피노체트 청산’을 넘어 ‘피노체트 극복’을 위한 동력을 기대한다. 피노체트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이끈 리카르도 라고스 전 대통령(2000∼2006년 집권)의 회고록 제목 ‘피노체트 넘어서기’에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