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맞추기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0.02 14:37:43
‘민족의 명절’ 추석 당일인 9월19일 방송뉴스를 보면 A 방송사는 첫 번째부터 여덟 번째 리포트 포함 9개가 추석 관련 소식이다. B 방송사는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가 추석 관련 기사였다.
같은날 C 방송사의 추석 관련 리포트는 다섯 꼭지였다. D 방송사의 추석 관련 리포트는 딱 하나 뿐이었다. 그것도 5번째였다.
이 네 방송사 중에 공영방송과 민영방송, 종합편성채널이 섞여있다. 과연 어느 방송이 공영방송일까. 공영방송의 본질에 대한 가치관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상사에 가까운 추석 관련 기사 대신 다른 사회 현안에 대한 진단이 많을수록 공영방송의 본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널리즘 측면에서도 명절 소식이 뉴스가치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방송사중 A는 KBS, B는 MBC다. C는 민영방송 SBS이고 D는 종합편성채널인 JTBC다.
공영방송은 국민적 관심사에 주목해야 하니 추석 명절만큼은 소홀히 다룰 수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뉴스 전체 분량 차이도 있다. 그렇다면 지난달 30일 뉴스를 한 번 더 살펴보자. 이날은 TV조선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해 가정부로 일했다는 이모씨의 인터뷰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주목을 끈 날이다. 채 전 총장 의혹은 세간의 관심사이고 새로운 주장이 나왔으니 보도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양상에서는 차이가 난다.
KBS 뉴스9는 톱에서부터 네번째 리포트까지 채 총장 의혹을 다루면서 TV조선의 보도 내용을 두 개의 리포트를 통해 충실히 보도했다. 세 번째 채 전 총장의 반박을 한 꼭지로 다루기는 했지만 네 번째에 배치한 ‘데스크 분석’에서 이번 논란의 본질은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 문제이자 도덕성 문제라고 강조했다. 데스크가 직접 출연해 사안을 정면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KBS의 입장으로 보일만한 여지가 충분했다.
KBS는 최근 추적60분의 공무원간첩사건 편의 불방 등 논란이 일 때마다 다툼이 있거나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조선일보와 채 전 총장의 논란 역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은 일단 취하됐지만 법적 절차가 예상되고 양측의 주장이 치열하게 맞서는 사안이다. 또 객관성과 중립성을 강조했던 KBS가 아직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사안에 한 쪽 편의 시각을 대변하는 데스크의 리포트를 내보내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MBC와 SBS, JTBC는 TV조선의 보도와 채 전 총장의 반박을 종합해 한꼭지로 다뤘다. 평소 미지근하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보도를 해온 KBS가 더 앞서나간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성명 내용을 귀담아 듣게 되는 대목이다. “KBS 기자가 단 한 줄도 취재하지 않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베껴 톱으로 두 꼭지를 보도한 경우는 아마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뉴스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 아닐까 한다. KBS뉴스는 정권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조선일보의 이중대로까지 전락했다.”
우리 사회의 공영방송에 대한 인식과 합의는 아직 미흡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이 뒤흔들리고 논란의 중심이 서게 된 데는 우리 사회가 함께 져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외부의 조건 탓만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공영방송이 되려면 저널리즘의 원칙을 우선하고 황금율을 지키는 스스로의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