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기자들에게 귀를 열어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KBS 기자들이 다시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KBS기자협회는 2일 긴급총회를 열어 김시곤 보도국장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의했다. KBS기협은 신임 투표 시기와 절차, 방법 등은 기자협회장 및 운영위원회에 일임하기로 했다. 지난해 6월 ‘리셋(Reset)! KBS 국민만이 주인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돌입했던 총파업이 노사 합의로 종결된 지 1년 4개월만에 다시 KBS 기자들이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총파업은 물론 이번 역시 불공정 보도에 대한 기자들의 문제의식이 폭발한 것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KBS기협과 KBS전국기협,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KBS 노동조합 등 KBS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거의 모든 조직들이 지난달 30일 KBS 뉴스9가 TV조선의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 보도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KBS는 당시 톱뉴스부터 4번째 뉴스까지 TV조선의 보도를 인용했지만 타 방송사에 비해서도 과도한 것이었다. 역시 불공정 보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MBC조차 TV조선의 보도와 채 전 총장 측의 반박을 종합해 한 꼭지로 보도한 것만 봐도 명확히 드러난다.

KBS 새노조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채 전 총장과 법적 다툼까지 벌이고 있는 언론사 종편의 취재물을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없이 녹취를 받아서 톱으로 방송한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며 “또한 담당기자가 강하게 반발하는데도 우격다짐으로 제작하게 함으로써 KBS 기자들의 자존심마저 짓밟아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KBS 기자들의 반발은 단순히 이번 ‘혼외자 의혹보도’ 때문만은 아니다. KBS 사장과 정권이 바뀐 뒤에도 끊이지 않는 불공정 보도 논란이 누적된 데 따른 것이다. KBS 안팎에서는 KBS뉴스가 정권의 유불리에 따라 보도 가치를 판단하고 있다는 의혹을 여러차례 제기해왔다. 국정원 댓글 의혹에 대해서는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보도를 요구하는가 하면 4대강 예산을 지적하는 리포트는 정부여당 측 입장이 부족하다며 보도를 불허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이번 ‘혼외아들 의혹’ 인용보도는 평소 강조했던 기계적 중립성과 균형성에 비춰 봐도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데스크분석을 통해 한쪽의 관점을 지지하는 논평까지 곁들었으니 어째서 이 사안에 대해서만 과감하게 칼을 빼들었는지 저널리즘의 상식으로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KBS 보도국 간부들은 이전 국정원 편파보도 논란이 거셀 때 낸 성명에서 △진행 중인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예단이나 섣부른 결론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는 표현 자제 △가치판단이 개입된 사안에 대해 가치중립적 입장 견지 △여론의 분열이나 갈등을 심화시키거나 논란을 증폭시킬 수 있는 보도에 신중 등을 기준으로 내세웠다. 과연 이 원칙이 공평무사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자문할 때다.

더 한탄스러운 것은 기자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수뇌부의 반응이다. 신임투표는 사규에 어긋나니 엄벌하겠다는 엄포나, 물먹은 기자들의 잘못이라는 책임 전가는 공영방송의 보도 책임자의 발언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실망스럽다.

KBS는 국내 언론계의 맏형이라고 자부해왔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청정언론으로서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 위치다. 또한 국민을 설득해 수신료 정상화라는 숙원을 이루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시점이다. 그 어느 때보다 공정보도가 절실한 지금 일선 기자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강제로 제압하려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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